선사유적을 답사하다 보면 괴질과 연관된 현상들을 가끔씩 접하게 된다. 청원 두루봉 새굴 구석기유적에서는 대마씨가 발견된 적이 있고 지난 2001년 발굴조사된 진천 장관리 유적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백신이나 항생제가 전혀 없었던 당시이므로 이 대마씨는 아마도 괴질 등 각종 질병에 치료약으로 사용되지 않았나 발굴조사단은 추정하고 있다.
 춘천 교동에서는 살림집이 무덤으로 바뀐점이 발견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동굴유적인 교동 유적에서는 세 사람의 주검들이 각각 머리를 벽쪽에 두고 발을 중앙부에 모이게 했다. 수레바퀴살처럼 누워있는 주검들은 시기를 달리하여 차례차례로 묻은 추장(追葬)같기도 하지만 적의 침입이나 괴질로 여러명이 함께 죽자 살림집에 사람을 묻고 다른 곳으로 이사한 일종의 벽사행위로도 풀이된다.(이융조, 우리의 선사문화)
 14세기 중반에 유럽대륙은 페스트가 휩쓸고 지나갔다. 교황청이 있던 프랑스 아비뇽에서 발생한 페스트는 무려 5년간이나 창궐하면서 유럽대륙을 폐허로 만들었는데 이때 유럽인구의 3분의1이 사망하였다.
 나치스의 침략과 파리의 해방을 상징적으로 처리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알제리의 해변도시 「오랑」에 페스트가 발생하여 완전 폐쇄된 가운데 주민들이 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16세기 초반에 중남미에서는 두창, 홍역 등 전염병이 잇따라 발생하여 그 찬란한 잉카, 아즈텍 문명을 폐허로 몰아넣었다.
 고대 국가에서도 괴질은 번번이 나타나 사회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신라 남해차차웅(南海次次雄)19년(AD22)에 역질이 유행하여 사람이 많이 죽었고 한 겨울에도 얼음이 얼지 않았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내해이사금(內海尼師今) 8년(203) 겨울에 말갈이 침입하였고 복숭아 오얏꽃이 피었으며 역질이 돌았다.소지마립간(炤知麻立刊) 5년(483) 여름에 큰 홍수가 났는데 재해지역을 순시한 왕은 백성을 위문하고 재해의 정도에 따라 곡식을 내렸다. 그해 음력 11월에 서울(서라벌)에서 또 역질이 유행하였다.
 고려, 조선시대에도 괴질은 끊이지 않았다. 허준이 자기 몸을 돌보지 않으며 괴질 치료에 앞장선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푸른 곰팡이에서 추출한 페니실린과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된 아스피린은 사람의 생명을 연장한 의약계의 큰 발명으로 꼽힌다.
 1백년전에는 사람의 평균 수명이 40세였는데 그간 의약의 발달로 오늘날에는 70~80세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의약의 발달과 더불어 새 병원균도 나타나고 항생제 내성을 지닌 변종 바이러스가 나타나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중국 등지에서 창궐하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장애군)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아직 여기에 대해 백신도 특별한 치료법도 없어 전세계가 사스 공포에 떨고 있다. 우리고장 오송단지에서 치료약품을 발명할, 그런 날을 기다려 본다.

키워드

#연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