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본 땅을 밟으며
다시 일본 땅을 밟으며
  • 중부매일
  • 승인 2018.02.0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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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세이] 최시선 수필가
일본 오사카성 / 클립아트코리아

일본을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우리 마음속에 증오의 대상이기도 하고, 경쟁의 대상이기도 하다. 역사로 보면 우리는 피해자, 일본은 가해자이다. 그러나 때로는 우월감에 젖기도 한다. 우리가 선진 문화를 전해 주었고, 일본은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자나 불교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조선 초기만 하더라도 우리는 일본을 교린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웃이기는 하되, 달래는 차원에서 외교관계를 맺었다. 오죽하면 일본 사람을 '왜인'이라고 불렀을까.

오기를 잘했다. 일본에 가면 꼭 전철을 타고 싶었다. 전철에는 사람들로 꽉 찼다. 얼굴로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도무지 누가 일본 사람이고 한국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이를 보면 분명 뿌리가 같은 족속이다. 말만 다르지 않으면 무슨 수로 구분을 한다는 말인가.

돗토리 시에 갔다. 돗토리 시는 내가 사는 청주시와 자매결연한 도시다. 일본 남서부의 작은 현으로 유서 깊은 도시다. 원자폭탄 투하로 유명한 히로시마와 연접해 있고, 아름다운 리아스식 해안과 사구가 펼쳐져 있다. 그런데 운이 좋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해안 사구를 보려고 언덕에 올랐다가 그만 엄청난 모래 세례를 받았다.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던지 도무지 눈을 뜰 수가 없었고,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사구는커녕 바다 한 점 보지 못하고 언덕을 내려와야 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사카로 향했다. 차창가로 바깥 풍경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우뚝우뚝 다가서는 마을 어귀마다 납골묘가 보인다. 일본 사람들의 사후 세계를 보는 듯하다. 조상이 죽으면 화장을 하고, 집과 가까운 곳에 모신다. 우리와 다른 점이다. 신사에 가서 조상에게 복을 빌고, 죽으면 절에서 장례를 치른다. 기독교가 우리보다 훨씬 먼저 일본에 들어갔지만 신자는 아주 미미하다. 이는 일본 사람의 뿌리 깊은 신도 사상과 불교의 영향 때문이다.

오사카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제는 나라에 갔다. 나라(奈良)!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일본 말이다. 74년 동안 고대 일본의 수도로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유서 깊은 도시 이름이다. 특히 나라는 백제와 관련이 깊다. 백제의 왕인 박사가 유학을 전해 주었고, 천황의 태자를 가르치기도 했다. 지금도 유적을 발굴하면 여기저기서 백제와 관련된 유물이 나온다고 한다.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사슴공원과 동대사이다. 전에 왔을 때와 많이 다르다. 정비가 잘 되어 있고 사슴도 더 늘어난 것 같다. 그때 딸과 아들과 함께 했었는데 중학생 딸아이가 사슴에게 과자를 주다가 흠칫 놀랐던 장면이 떠오른다. 과자만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까지 물었기 때문이다. 몇 번을 시도한 끝에 간신히 성공하고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사슴 공원에는 무려 1천200 마리의 사슴들이 방사되어 있다고 한다. 공원을 지나니 동대사가 나타났다. 정말 아름답다. 금당은 에도 시대에 재건된 것으로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목조 건물이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오사카 성으로 향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우리는 이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숙적이다. 전날 호텔 근처에 있는 온천을 갔는데, 마침 TV에서 일본과 우리나라의 프로야구 경기를 생중계하고 있었다. 일본, 우리나라, 대만 이렇게 3개 나라가 프로 야구 시합을 하는 모양인데, 마침 우리와 일본이 마지막 결승 경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TV 화면 상단에 '숙적 한국'이라고 쓰여 있었다. 숙적이라. 아, 우리가 숙적이라고? 다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결과는 대패였다. 안타깝다. 우리가 숙적임을 정말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그 유명한 천수각(天守閣)에 오른다. 글자 그대로 하늘을 지키는 망루란 뜻이다. 천하 통일을 한 후 군웅을 호령하기 위해 지어졌다. 이 천수각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 민족을 상대로 그 길고도 무서운 7년 전쟁을 지휘했다. 얼마나 우리를 짓밟았는가. 심지어는 부하들의 전공을 살피기 위해 사람 귀까지 베어오도록 했다. 참으로 악랄하기가 이를 데 없다. 교토에 가면 귀무덤이 있다. 그나마 의식 있는 일본 사람들이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자 이 무덤을 만들어 놓았단다.

최시선 수필가

역사는 반복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일본에 대항하여 독립을 쟁취했지만 또 언제 당할지 모르는 일이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했다. 맞다. 역사를 모르고 어찌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오사카 성 주변에 파 놓은 해자에 물이 구슬프게 흘러간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못다 이룬 한이 서린 것일까. 성을 걸으며 다시금 일본을 생각한다. 일본, 그대는 누구인가?


최신선 수필가 약력

▶월간 문예사조 수필 등단
▶CJB 청주방송 제5회 TV백일장 수필 장원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청주문인협회 부회장
▶저서 '청소년을 위한 명상 이야기', '학교로 간 붓다', '소똥 줍는 아이들', 수필집 '삶을 일깨우는 풍경소리'
▶진천 광혜원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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