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한인섭 편집국장

7일 오전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연안여객선터미널에 정박해 있던 만경봉 92호에서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등 예술단원들이 하선해 강릉아트센터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18. 02. 07 / 뉴시스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이 8일 저녁 강릉 아트센터에서 가수 이선희 대표곡 'J에게'를 선보였다.

알다시피 'J에게'는 1984년 가수 이선희가 MBC 강변가요제에 '4막 5장'이라는 그룹 일원으로 참가해 대상을 받은 노래다. 신장 158㎝의 단신인 이선희는 당시 무릎 아래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청색 치마에 운동화를 신고 무대에 올랐다. 둥그런 뿔테 안경에 아줌마 이미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이른바 '뽀글파마' 모습으로 등장했던 그는 대중의 고정관념에 자리잡았던 가수 이미지와는 퍽 달랐다. 그랬던 그녀는 데뷔곡을 선보인 후 '갈등', '아! 옛날이여', '알고 싶어요'와 같은 수많은 히트곡으로 오랫동안 남성들의 감성을 '격발' 하곤 했다. 30여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추억의 노래'로 취급되지만, 자신의 노래에 흠뻑 빠지는 열정과 가창력은 여성팬들도 사로잡기 충분했다.

그랬던 'J에게'가 '선제타격'이라는 표현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정도로 고조된 한반도 긴장을 완화 여부를 가를 '카드'의 하나로 등장한 셈이다.

8일 저녁 삼지연관현악단이 선보인 'J에게'는 80인조 오케스트라와 북한 여성 특유의 음색과 곡조가 맞물려 색다른 감흥을 줬다. 이들은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등 '7080類'의 가요를 차례로 열창했다. 역시 북 최고의 모란봉악단과 청봉악단, 조선국립교향악단, 만수대 예술단 등 6~7개 예술단에서 남한 공연을 위해 차출한 일종의 '프로젝트 악단' 다웠다.

남북교류가 활발했던 2004년 무렵 금강산 삼일포 사과 과수원 조성에 나섰던 제천시장과 의장 등 방문단은 반주를 겸한 저녁식사를 서빙하는 북한 '접대원 동무(음식점 여직원)'들에게 종종 노래를 청했다고 한다.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이들은 교육이라도 할 태세로 김일성 부자 찬양곡 '가슴팍에 꽂힌 사랑'을 불러 취기를 단박에 가시게 했다 한다. 이들은 북 여성들이 불러주는 '아침이슬'을 듣는 대목에서는 그야말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애당초 이들에 익숙하지 않은 노래인 데다 일거수 일투족이 조심스러운 북녘땅에서 이른바 '운동권 가요'를 듣는 게 꽤나 얼떨떨했을 게다. 이들이 당황스런 상황을 벗어나려 삼았던 방편은 '앙코르'를 외치며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한인섭 편집국장

그랬더니 접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앙코르가 뭡메까"라며 목청을 높였다고 한다. 무슨 말일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이들은 "재창(再唱) 입메다"라며 바로잡았다고 한다. 삼지연악단은 8일 남쪽 관람객을 배려라도 한듯 '앙코르 곡'도 선보였다.

이들의 방남이 핵실험으로 긴장이 고조된 한반도의 향후 정세와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지 초미의 관심사다. 남북 단일팀 경기에 앞서 선보인 이들의 무대가 '가슴팍에 꽂힌 연주'가 됐어야 할텐데, 과연 그렇게 될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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