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소상공인] 37. 청주육거리시장 '영진축산물' 최경호 사장

청주육거리시장에서 30년째 '영진축산물'을 운영하고 있는 최경호 사장은 소를 직접 길러 도축해 판매해왔다. 그는 또 '육거리시장상인회장'으로서 전통시장 활성화와 상인들의 권익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김용수

[중부매일 김미정 기자] 조선시대 가축을 도살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백정(白丁), 예나 지금이나 없어서는 안될 직업 중 하나다.

'백정'에 대한 선입견으로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육점을 차린 최경호(61) 청주육거리시장 내 '영진축산물' 사장은 지금은 '소 박사'가 됐다. 그리고, 전국 광역시를 제외하고 전국 최대 규모인 육거리시장의 변화를 리드하는 상인회장이다.

"우리 집은 한우 암소, 특히 30~35개월의 새끼 안 낳은 소만 도축해서 팔아요. 그래서 고기가 부드럽고 감칠맛이 나요."

영진축산물은 '88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 문을 열었다. 올해로 꼭 30년이 됐다.

최경호 사장이 한우와 돼지고기 등이 놓인 고기진열대를 살피고 있다. 최 사장은 한우 암소, 그중에서도 30~35개월의 새끼 안 낳은 소만을 도축해 판매한다. / 김용수

설 명절을 코앞에 두고 요즘 1년중에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매일매일 도축을 해서 질좋은 고기를 내놓는 것이 특징. 가게 옆에서는 매일 발골작업이 이뤄진다. 소 한 마리당 발골작업에는 1~2명이 꼬박 2~3시간을 매달려야 한다.

"옛날에는 명절 때 고기가 진짜 많이 나갔죠. 가족들간, 이웃들간 모여서 고기 먹으면서 정(情)을 나누곤 했는데 요즘은 옛날만 못해요."

시대가 변하면서 명절 분위기가 예년만 못함을 실감한다고 했다. 옛날에는 한 명절에 소를 15두씩 잡았는데 요즘은 3~4두면 충분하단다. 시장이다 보니 구이용보다는 국거리용, 산적거리가 많이 팔린다.

최경호 사장이 발골작업을 하고 있다. 소 한 마리의 발골작업에는 한 명이서 2~3시간은 꼬박 매달려야 한다. / 김용수

"경기가 어려우니까, 대형마트가 많이 생겼으니까, 인구는 늘지 않으니까 고기 먹는 양도 줄었어요."

소고기선물세트도 줄었다고 귀띔했다.

"김영란법 생긴 이후로는 선물세트도 낮은 가격대만 찾고 물량도 많이 줄었어요. 5만원 해봐야 1㎏ 조금 넘는데 얼마 안되죠. 올해에는 더 나가겠지."

일명 '김영란법'인 부정청탁금지법이 개정돼 올해부터는 선물세트 상향선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라갔다. 최 사장은 내심 소고기선물세트가 많이 팔리길 기대하고 있다.

청주 토박이인 최 사장은 1983년 농업인 후계자로 선정돼 청주시 문의면에서 소 20두를 키웠었다. 어깨너머로 도축일을 배우고 정육점 일을 배워 1988년 '영진축산물'을 오픈한 것이다.

올해로 30년이 된 '영진축산물'은 단골이 대부분이다. 최경호 사장이 매장을 찾은 한 단골고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용수

"시골서 소 먹이다가 농업인후계자 자금 지원받아서 정육점을 차리게 됐어요. '백정'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부모님이 다 반대하셨었죠. 사실, 정육점은 돈을 벌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어요."

소고기 맛과 질이라면 자신있다고 최 사장은 어필했다. 1993년 소고기등급제 시행 이후 소고기 '질'을 더 깐깐하게 챙겼다고 했다.

"예전에는 살찐 소를 잡아 판매하면 됐는데 소고기등급제 이후로는 소를 볼 줄 알아야 하고, 또 어느 농가의 고기가 맛과 질이 좋은지 알아야 했거든요. 소 사육농가 주인에게 몇 푼 더 주더라도 좋은 고기를 사왔죠. 30년 하니까 이제 소고기는 한번 슥 봐도 다 알아요."

최경호 사장이 판매할 고기의 중량을 재기 위해 디지털 저울에 고기를 올리고 있다. 시장 안에 있는 정육점이다 보니 구이용보다는 국거리용과 산적거리가 많이 팔린다. / 김용수

2004년, 돼지고기를 500g(1근)에 390원에 팔기도 했었다.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량도 파격적인 기록을 남겼다.

"돼지고기를 하루에 6톤까지 팔아봤어요. 그 때 우리집 고기 안 먹어본 사람이 없을 거예요. 당시에 평택, 대전, 천안 등 청주 인근에서 다 고기 사러 왔었으니까."

당시 국내산 돼지고기를 러시아로 수출하기 위해 물량을 대량 확보했지만 갑작스레 수출길이 무산되면서 당시 수출물량을 넘겨받아 6~7개월간 저렴하게 판매했던 것이다.

'육거리시장'과 '정육·축산'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윈윈'관계다. 육거리시장에서는 1963년 이전까지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우(牛)시장이 열렸었고, 시장내 정육점에선 신선하고 질좋은 고기를 공급받았다.

청주육거리시장 안에 위치한 '영진축산물' 내부 모습. 정육점 특유의 붉은색 형광등이 매장을 비추고 있다. / 김용수

"타지역 사람들은 '육거리시장'을 '고기 육(肉)'으로 생각하기도 해요. 축산물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최경호 사장은 정육점 사장보다는 청주육거리시장상인회장으로 더 유명하다. 2007년부터 11년째 상인회장으로, 시장 내 1천200개 점포·노점 상인들을 대변하고 있다. 육거리시장은 전국 광역시장을 제외하고 최대 규모 시장으로 그의 역할도 크다.

"상인회장 하면서 가게에는 소홀했죠. 봉사하려고 시작한 일인데 시장에 좋은 일이 많이 생겼고 보람도 커요."

최 사장은 2011년 전통시장 활성화 유공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2002년 전국 최초 아케이드 설치, 주차장 건립, 멀티회관 신축, 전국 1천개 시장에서 벤치마킹 방문 등이 그가 이끌어낸 성과들이다.

"그동안 시장이 장사가 잘되는 쪽으로 신경을 써왔는데 앞으로는 아름답게 꾸미는 쪽으로 신경쓰려고 해요."

청주육거리시장 안에서 30년간 자리를 지켜온 '영진축산물' 외부 전경. / 김용수

특히 육거리시장은 대통령후보 등 정치인들이 청주를 방문하면 꼭 찾는 단골방문지로 알려져있다. 그 때마다 최 사장은 바로 옆에서 시장 안내를 맡았었다. 시장상인들의 애로사항 전달자 역할도 소홀하지 않았다.

"우스갯소리로 대통령 후보때 육거리시장에 안오면 대통령 못된다고 해요. 이회창씨도 저랑 두 번 약속했다가 못 오셨고, 안철수·홍준표 후보도 지난해 육거리시장에 오려고 했다가 안 왔는데 결국 대통령이 안됐죠. 청주시민들이 육거리시장에 많이 오니까 청주의 기(氣)를 받으려면 육거리시장에 와야 하는 거죠."

그는 육거리시장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남다르다.

"전통시장을 많이 아껴주고 찾아주면 좋겠습니다. 설명절에 전통시장에서 질좋은 상품들 저렴하게 사가세요."

설 명절 대목을 맞아 전통시장에도 한파속 모처럼 활기가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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