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오래 전 소원 중 하나를 이루었다. 그럼 기뻐해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소원은 바로 안경 쓰기다. 중학교 때부터인가 싶다. 아니다. 초등학교 때도 가끔 안경을 쓰고 싶었다. 당시 초등학교 우리 반에는 안경 쓴 친구가 별로 없었다. 특이한 것은 안경 쓴 친구들이 제법 공부를 잘하다는 거였다. 책을 많이 봐서 눈이 안 좋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옆집 친구는 텔레비전을 가까이 봐서 그런 거라고 했다. 그러니 텔레비전만 보고 책을 안 봐서 공부를 못 하는 사람도 안경을 쓴다는 거였다. 그래도 안경을 쓴 친구들은 뭔가 듬직해 보이고 똘방똘방해 보였다.

안경하면 또 하나, 바람이 불어 간혹 눈에 뭐라도 들어갈 때면 안경을 쓰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눈에 들어가는 것을 안경이 방패처럼 딱 막아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가서는 가수 전영록 등 연예인들이 일명 잠자리 안경을 쓰고 나왔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안경 알 없이 안경테만 쓰고 나오기도 했다. 내 눈에 전영록이 멋져 보였다. 친구들도 그랬는지 안경테가 잠자리 모양으로 바뀌었다. 정말 안경을 간절하게 쓰고 싶었다. 시력이 안 좋아야 하는데 애석하게 난 시력이 좋았다.

'그래, 눈이 나빠져야 안경을 사주시겠지?' 텔레비전을 가까이 보았다. 그래도 눈이 나빠지지 않았다. 그럼 책을 많이 봐야 하는데... 공부하는 건 싫었다. 눈이 나빠지기 전에 두통에 시달리거나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빛나는 한낮의 해를 오래오래 바라보는 거였다. 그래도 눈은 나빠지지 않았다. 그러다 가끔 눈을 비벼 보았다. 눈만 따가울 뿐 역시 시력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안경은 포기해 버렸다. 아주 가끔 바람이 불어 흙먼지가 날릴 때면 안경이 떠올랐다. 그러다 스무 살이 넘어 난시가 심해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릴 때면 안경을 쓰게 됐다. 잠자리 안경은 유행이 지나 책에서 보던 김구 선생님 안경처럼 동그란 것을 썼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정말 시력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안경점에 들러 안경을 맞췄다. 이번에는 보통의 안경이었다. 예전 같으면 안경을 끼고 살았을 정도지만 이젠 그렇지 않았다. 나이 듦의 신호였기 때문이었다. 안경을 쓸 때마다 조금 슬퍼졌다.

이런 저런 이유로 집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거나 책을 볼 때는 안경을 쓸 뿐 외출할 때는 안 썼다. 그동안 안경 없이 살아서 그런지 몹시 불편했다. 요즘은 안경을 쓰고도 작은 글자들은 잘 안 보인다. 특히 이메일 주소 같은 알파벳은 더 헷갈린다. 휴대폰 문자로 오는 이메일 주소 같은 것도 그렇다. 이런 나의 얘기를 듣던 아는 누나가 선물을 하나 주었다. 누나도 하나 있다면서. 선물은 바로 내 손바닥만 한 엄청 큰 돋보기다. 이 돋보기로 보면 진짜 크고 선명하게 잘 보인다. 너무 커서 조금 웃기지만……. 그래도 성능 하나는 끝내준다. 덕분에 예전 엉뚱한 곳으로 보내던 메일을 잘 보내게 되었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예전 그렇게 오래 바라보았던 활활 타오르는 해를 이젠 아예 무서워 바라보지 않는다. 뭐라나, 자외선이 노화의 지름길이고 언뜻 들었기 때문이다. 책을 멀리했었지만 지금은 읽을 책이 쌓여있다. 물론 아주 읽기를 좋아한다. 호~ 입김 불어 안경을 닦아 본다. 그리고 오래 전 소원을 이룬 안경을 쓰윽 써본다. 참 맑다. 안경을 통해 보이는 세상을 더 맑은 눈으로 바라봐야겠다. 씨익~ 거울 앞에서 웃어 본다. 소원 하나를 분명하게 이뤘으니 이젠 무슨 소원 하나를 가질까, 생각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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