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 중부매일
  • 승인 2018.02.1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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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조영의 수필가
사진 / 조영의씨 제공

1월 달력을 넘기니 2월 중간쯤 빨간 숫자가 먼저 들어온다. 올해 유난히 추워서인지 붉은색은 불빛처럼 움츠렸던 마음을 녹여주는 듯하다. 반갑기도 하다. 설 명절이 지나면 봄은 곧 올 것이다. 마음은 봄맞이하고 싶은데 밖은 여전히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맏며느리인 나는 설 열차승차권 예매, 귀성길 차량 정체 기사보다 명절 차례상 물가에 더 관심이 쏠린다. 채솟값이 한파로 인해 많이 올랐다기에 대형 마트를 먼저 들렀다.

설 명절 선물세트가 발길을 잡는다. 같은 물건인데도 세트로 포장되면 사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개성 있는 포장으로 상품을 돋보이게 하고 풍성한 더미는 넉넉함을 더한다. 선물을 들고 고향 언덕을 내려가던 지난 시간이 그립다.

친정집 안방 선반에는 원통형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누구든 보이고 닿는 곳이었지만 아버지 외에는 다가갈 수 없는 성역이었다.

아버지를 눈여겨보면 외출에서 돌아온 후 모자나 안경 따위를 넣는 것 외에는 별다를 것 없는 상자를 가족 누구도 만지지 않았다.

그 상자가 열리는 날이 있었다. 섣달 그믐날 밤이다. 설 선물을 미리 주기 위해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을 불러놓고 상자를 내렸다. 눈과 귀가 모두 아버지 손길을 따라다녔다. 고요하고 행복한 침묵만 흘렀다.

설 선물보다 상자의 깊이가 나는 더 궁금했다. 아버지 손이 깊숙이 내려갔다 올라오면 포장하지 않은 선물이 나왔고 박수와 환호도 함께 커졌다.

형제가 많았기에 막내인 내 차례가 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는 가장 멋진 마술사였다.

선물로 받은 양말을 안고 설 아침을 기다리는 섣달그믐의 밤은 춥고 길었지만 행복했다. 잠결에 눈썹 센다는 말도 야광귀신 얘기도 가물가물 들렸다.

나도 아버지같이 설 명절 선물을 준비하는 나이가 됐다. 아름다운 기억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준비하는 선물은 덕담 봉투다. 세뱃돈 넣은 봉투에 새해 덕담을 손 글씨로 쓴다. 푸른색 잉크를 넣은 만년필로 쓰는데 이유가 있다.

덕담은 간단하되 새해 소망하는 마음을 담는다. 소박한 내 정성이다. 처음에는 덕담 봉투에 적힌 글을 읽을 때 쑥스러워하더니 지금은 자연스럽다.

지난해는 동서도 덕담 봉투를 준비했다. 나를 따라 하는 행동은 신선하지 않았지만 따라한다는 것은 그만큼 좋다는 것이기도 하기에 지켜봤다. 그런데 모두 표정이 이상하다. 뭐지? 눈빛으로 물어본다. 연이어 서로 덕담 봉투를 곁눈질하기도 하고 바꿔보면서 어수선하다.

덕담은 영문이었다. 어른들은 실력을 알아보자며 재촉하고 아이들은 원망에서 애원으로, 다시 응석 부리며 쓴웃음만 짓는다. 모두 당황스럽고 난감한 일이 되었다. 일이 커지자 동서는 좌불안석이고 바로 통과한 딸은 여유롭다.

나머지는 함께 머리를 맞대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모두 자신의 덕담 봉투를 읽었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가족 모두 큰 소리로 웃어보기는 처음이다. 올해 덕담 봉투는 수준을 고려할지, 한글로 쓸지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새해 아침 차례를 지내면 선산으로 간다. 그곳에서 사촌들을 만난다. 자손이 많아서 움직이는 소리만으로도 울림이 된다. 각기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으면 찬바람을 피할 곳도 없고, 찬 기운이 잔디 위로 올라와 서늘하다. 그래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잠시 잊는다.

아이들은 또래끼리 뛰어놀고 시집와서 동서가 된 여자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정이 도탑다. 남자들도 마냥 좋다. 웃음소리가 높았다가 사라지고 또 울려 퍼지면서 설날의 선산을 깨운다. 할아버지 자손들이다.

모두 함께 모여 인사하고 웃음으로 성묘하니 좋은 날이다. 선산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또 다른 고향이 되었다.

조영의 수필가

시대가 변화하면서 명절의 모습도 변하고 가족의 의미도 달라졌다. 전통적 가족이 핵가족으로 지금은 딩크족이 늘어나면서 인구절벽 위기를 맞고 있다. 반면 애완동물을 키우는 딩크펫 가족은 늘어나는 추세다.

싱글맘, 싱글대디, 비혼맘(非婚+mom)까지 가족이 해체되고 재탄생되는 지금, 선산에서 생명의 뿌리를 찾고 일가(一家)가 모여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이 주신 명절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떡국을 먹으면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있다. 작년의 잘못을 반성하고 새해는 좀 더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자는 의미라고 한다. 올해 설 명절 떡국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평창동계올림픽 열기가 뜨겁다. 스포츠로 세계인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듯 한 마음으로 염원하고 응원하는 흥겨운 설 명절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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