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고기로 빚은 평안도식 어머니 만둣국 아련"

이명팔씨가 북한에서 먹었던 평안도식 꿩 만둣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8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이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날의 기억은 또렷해 진다"며 어릴 적 추억을 회상했다./신동빈

[중부매일 송휘헌 기자] "어제 일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77년 전의 일은 생생하게 기억이 나니 사람이 참 신기하죠."

평안북도 벽동군 우시면 운중동 마을이 고향인 이명팔(83·청주시 금천동·충북지구이북도민연합회장) 옹은 6살(1936~1941년) 때까지 살았던 고향의 설날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는 설날이 다가올 때마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 가마솥에 끓여주셨던 어머니의 떡만둣국 맛이 아련해진다.

"쌀이 귀한 산골이라 옥수수나 조밥이 주식이었어요. 김치와 간장, 된장이 반찬의 전부였으니 설날은 고깃국을 맛 볼 수 있는 특별한날 이었다"고 회상한 이 옹은 "요즘은 뭐든지 풍성 한데 그 맛이 나지 않는다"고 아쉬워 했다.

평안북도식 만두는 꿩이나 닭고기를 뼈째 다져 김치와 콩나물 등 채소로 속을 채웠다. 소뼈와 기름, 꿩이 닭의 뼈를 고아 만든 육수에 흰떡을 넣고 끓였다. 놋그릇에 가득 담아 계란을 부쳐 잘게 썬 노란지단과 고기 꾸미를 얹어 상에 올리면 입안에 군침이 돌곤했다.

이명팔씨가 올림픽 참가를 위해 강원도 평창을 찾은 북한 선수단의 모습을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신동빈

이 옹은 "북에서는 만두를 중시해 흰떡을 조금만 넣었다"며 "고기가 귀해 야생 꿩이나 닭을 잡아 잔뼈까지 잘게 다져 만두 속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가마솥에 끓여 만든 엿에 볶은콩이나 옥수수를 묻힌 콩강정, 옥수수강정은 별미였다.

이 옹은 송화가루나 참깨·검은깨를 갈아 조청에 다진 후 꽃무늬 나무판을 이용해 다식을 만들던 어머니 모습도 눈에 선하다. 노란 송화가루 다식과 깨로 만든 다식도 이 무렵에나 맛볼 수 있었던 '특식' 이었다.

그는 "엿을 둘이서 당겨 엿가락을 빼면 가락엿이 만들어졌는 데 어린 눈에는 신기하기만 했다"며 "설날에 먹는 콩강정, 다식은 잊을 수 없는 맛"이라고 회상했다.

별미는 또 있었다. 방구석에 수수깡을 엮어 만든 둥그런 발에 넣어뒀던 고구마는 날 것이나 불에 구은 것 모두 맛있었다.

가을에 추수해 땅에 묻어둔 무수(무)를 싸리나무로 만든 꼬챙이로 찔러 꺼내 먹으면 달고 시원한 맛이 그만 이었다. "무수(무)구덩이라고 해서 가을에 추수한 것을 땅에 묻고 지푸라기로 덮어 놓는다"고 설명한 이 옹은 "국이며 찌개를 만들어 밥상에 올렸던 어머니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명절, 생일 등 특별한 날에 빠질 수 없는 것은 냉면이다. 옥수수전분, 메일 등을 섞어 만든 반죽을 솥 위에 걸어놓은 나무 제면 틀에 넣고 장정 3~4명이 달라 붙어 면을 뽑았다. 삶은 면은 어머니가 미리 만들어 놓은 무김치국물에 말아줬다.

그는 "북한에는 추우니까 김치를 싱겁게 만들었고 배추보다는 무김치가 많았다"며 "광주리에 있던 김치국물에 말아먹던 냉면은 잊지 못할 맛"고 강조했다.

TV, 라디오가 없던 그 시절이라 형들이 읽어주던 고전을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설날이면 10촌 이내 집안 친척 20~30명이 모였다. 한글을 모르는 이들이 많았던 시절 친척 형들은 춘향전, 홍길동전, 심청전 등 고전소설을 큰소리로 읽어주곤 했다.

흥이 난 친척들이 '얼쑤, 좋다'라며 추임새를 넣어주고, 눈물을 훔치는 대목도 더러 있었다. 이 옹 역시 설날의 하루는 유독 짧았다. 새끼줄을 둥글게 감거나, 돼지 오줌보에 바람을 넣어 만든 공으로 종일 축구를 즐겼다. 윷놀이, 제기차기, 밤이면 또래 아이들이 모여 쥐불놀이도 했다. 특히 어머니의 설빔을 차려 입으면 하늘을 날 것 같았다.

그는 "어머니가 무명 옷을 직접 만들어 주시면 하늘을 날 듯 기뻤고, 그저 깨끗하게 빨아 입혀 주시던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는 이 옹은 "고무신이 아까워 손에 들고 다니기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이 옹은 매년 설을 맞을 때마다 부모와 함께 살았던 고향산천이 그립기만 하다.

그는 "못 먹고, 못 입고, 못 다닌(여행) 부모님께 무엇이든 해 드리고 싶어 많이 생각난다"며 "지금처럼 좋은 시절 부모님과 같이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눈시울을 붉혔다.

"마을 앞에 흐르던 강이 아직도 있는지, 월남을 택하지 않았던 친척들은 잘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한 북한 선수들과 방문단을 TV로 접한 이 옹은 회상에 젖곤 한다. 그는 "이맘때가 되면 고향 땅이 그리워지는데, 북한 방문단과 응원단 모습을 보면 가슴이 뛰고, 설레인다"며 "통일이 됐으면 좋겠는 데, 주변 정세나 국내여건을 고려하면 쉽지않을 것으로 보여 서글프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이 남한과 화해하는 분위기로 바뀌면 얼마나 좋겠냐"며 "젊은 사람들은 통일이 되면 어려워질 것으로 생각하는 데, 북한의 자원과 관광을 개발하면 오히려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살아생전에 고향 땅을 한번 밟아보고, 외가 식구들의 생사도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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