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새벽에 몰려와 가래떡 만들던 옛모습 그립지요"
"꼭두새벽에 몰려와 가래떡 만들던 옛모습 그립지요"
  • 김미정 기자
  • 승인 2018.02.13 1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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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특집] 43년 전통 보은 '강씨방앗간'의 설맞이
보은군에서 2대째 떡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는 '강씨방앗간' 강호웅(왼쪽) 사장과 아내 김경남씨가 환한 미소로 인사를 전하고 있다./신동빈

[중부매일 김미정 기자] 구수한 떡 냄새가 정겹다. 짙은 연무처럼 뽀얀 김이 하루종일 피어난다. 한겨울 한파 속에서 시골 떡방앗간의 김이 더 따뜻하게 와닿는다.

보은군 보은읍 삼산리 전통시장 안에 자리잡은 '강씨방앗간'은 설 명절을 앞둔 요즘 하루 130여판의 떡을 쪄낸다. 보은토박이인 강호웅(56) 사장과 아내 김경남(54)씨는 가래떡을 뽑느라 바쁜 손을 돌리고 있다. 1975년 문을 연 후 지난 43년간 2대째 대물림을 하며 '이웃사촌'들과 함께 했다.

"옛날 설 대목에는 새벽 3시면 손수레, 경운기에 떡쌀을 싣고 와 문을 열어달라고 했어요. 방앗간 문 앞에 20~30m씩 줄을 섰었죠. 장작불을 지펴 찌다 보니 시간도 오래 걸렸는데…."(강호웅)

보은 전통시장 골목에 자리잡은 강씨방앗간/신동빈

"옛날에는 가족도 많았고, 명절에는 친척이나 이웃, 친구들이 다 모이니까 떡을 넉넉하게 했죠. 떡을 싸주기도 많이 했고요. 시골이라 인심이 좋았는데…."(김경남)

시대가 흐르면서 떡방앗간의 설 맞이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그 때가 좋았다고, 옛날이 그립다고 강 사장 부부는 회상했다.

강 사장은 보은군 학림리 4천~5천평에서 손수 벼농사를 지은 쌀로 떡을 빚는다. 최고의 쌀로 떡을 빚어 맛도 다를 수밖에 없다.

"보은은 밥맛이 제일 좋다는 품종으로 농사를 지어 떡도 맛이 다를 수 밖에 없어요"(강호웅)

각자 직접 농사지은 쌀을 가져와 떡을 만들다 보니 누구네 집 쌀이 가장 맛이 좋은지, 누구네 집 떡이 가장 맛있는지 서로의 떡을 나눠 먹으면서 나름 평가를 했단다.

쌀가루를 눌러 담은 시루에서 모락모락 김이 오르고 있다./신동빈

"우리집 쌀이 최고야", "우리 떡이 더 맛있어", "00네 떡이 (소금)간을 잘 했네" 서로 자랑을 하면서 먹었던 그 떡맛이 진짜 꿀맛이었어요."(강호웅)

설 대목이 연중 가장 바쁜 때이지만 옛날만 못하다. 대목기간도 짧아졌고, 떡을 찾는 이들도 줄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설 명절 전 일주일동안이 대목이었다면 요즘은 명절 전 3~4일이다. 대목을 앞두고는 매일 밤을 새우며 온종일 손에 물 마를 새 없이 일해왔다.

"설 하루 전인 15일이 가장 바쁠 것 같아요. 일은 힘들어도 좋은 날, 가족이랑 먹을 떡을 만드는 거니까 기분은 좋아요."(김경남)

강씨방앗간의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설을 앞둔 요즘은 새벽 3시에 나온다. 그날 만들 물량만큼 쌀을 씻어 물에 담그고, 빻아 전통방식으로 떡을 빚는다. 설 명절에는 가래떡은 기본이고 제사에 올리는 편, 약식, 찰떡이 많이 나간다.

강호웅·김경남 부부가 찰떡궁합을 자랑하며 가래떡을 뽑아내고 있다./신동빈

"가래떡은 길으니까 '오래 살라'는 뜻이 있어요. 흰색이니까 무병장수하라는 의미도 있고…."(김경남)

예부터 떡국은 새해 첫날 온 가족이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래떡이 길게 늘어진 것처럼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고, 하얀 색의 떡은 나쁜 일들을 씻어낸다는 의미였다. 가래떡을 총총 썬 모습은 옛 엽전과 닮았다 해서 재물을 의미했다.

쌀가루를 곱게 빻아 재료준비가 끝나면 한말짜리 시루판에 불을 올려 30분간 쪄낸다. 이후 강 사장이 떡시루에서 막 쪄낸 송아리떡을 뭉쳐서 기계 아래로 내려보내주면 아내는 찬물에 담근뒤 적당한 길이로 잘라 일렬로 가지런히 담는 작업을 한다. 결혼 30년 차 부부는 손발이 척척 맞는다.

"타이머도 필요없어요. 30분간 찌는데 냄새 맡아보면 '30분' 정확하게 맞춰요. 소금 간도 손으로 딱 잡으면 딱 맞아요."(강호웅)

강호웅씨가 43년간 희노애락을 같이한 절구(왼쪽)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신동빈

4남1녀중 둘째인 강 사장이 부모의 방앗간 일을 본격적으로 돕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졸업하면서부터다. 어느덧 36년이나 됐다. 8년전, 아버지 강남중씨가 떡값을 수금하러 가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면서 어머니 이복희(83)씨는 1년만에 아들에게 온전히 가게를 넘겨줬다.

강씨방앗간의 '보물'은 손떼 묻은 절구 '공이' 이다. 금 가고 벌어지고 낡았지만, 43년간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다. 기계는 모두 새 것으로 바꿨지만, 절구공이는 옛 것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어머니한테 물려받은 거라서 못 버리고 있어요. 우리집에서 제일 오래된 물건 입니다."

보은 토박이인 아내 김경남씨는 10년 전부터 남편일을 돕고 있다. 그녀는 보은군 마로면에서 20년 넘게 미용실을 운영한 미용사였다. 방앗간을 맡게 된 이후 하루종일 손을 움직여 떡을 빚고, 하루에도 수없이 찬물에 손을 담그다 보니 손이 편할 날이 없다.

설 대목을 앞두고 강씨방앗간은 종일 떡 쪄내는 수증기로 가득하다./신동빈

"손 관절이 안 좋아요. 손이 욱신욱신 쑤셔서 밤에 잠을 잘 못자요."(김경남)

강씨방앗간은 보은특산품인 대추를 넣어 '대추떡'을 자체 개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보은군의 지역축제인 '보은대추축제'에서 2007년 1회 때부터 매년 대추떡을 선보였다.

가족과, 이웃과 떡을 나눠먹으며 정(情)을 나눴던 설 풍경이 과거형이 되고 있다. 40여 년 떡방앗간을 지켜온 강호웅 사장은 올해 더 왁자지껄하고 정겨운 설날이 되면 좋겠다고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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