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창밖에는 성근 바람이 윙윙 벌떼 같은 소리를 내며 맴돈다. 거리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진지 오래다. 회색빛 하늘에는 이윽고 포슬눈이 바람 타고 불나방처럼 어지럽게 날린다. 추운 날에도 창문 앞 앙상한 감나무 꼭대기에서 겨울까치가 꽁지깃을 쳐들고 시린 발톱을 움켜지고 ''까아악 끽 까아악' 날선 울음을 토해낸다. 포슬눈은 점점 함박눈으로 변해 거리에 쌓인다. 포슬포슬 눈발이 날리는 허공사이로 김춘수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샤갈의 마을에는 三月에 눈이 온다/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새로 돋는 靜脈이 바르르 떤다/ -중략- 三月에 눈이 오면/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다시 올리브빛의 물이 들고/밤에 아낙들은/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3월에 내리는 눈은 농사에는 방해가 되지만, 시인 김춘수의 겨울눈은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을 물들이고, 아낙들은 서둘러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모습을 그리며 봄을 맞이하는 설렘과 약동을 그렸다.

주말 아침이 더디 흘러갔다. 찌뿌듯한 몸에 피로도 풀 겸해서 근교에 있는 숯가마로 차를 몰았다. 숯가마까지 따라온 함박눈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잉걸불에 물기마저 말려버렸다. 잉걸불을 보고 있노라니 아궁이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군불을 때던 모습이 되살아났다.

짧은 겨울, 안산 돌팍재 고갯마루로 해가 떨어지고 어둑어둑 어두움이 깔리면 사랑방에 군불을 지폈다. 잔솔가지에 밑에 바짝 마른솔잎을 넣고 안방 아궁이에서 불쏘시개를 들고 사랑방 아궁이로 달려와 불을 붙인다. 입을 동그랗게 모아 훅훅 불어 불씨를 살리면 매캐한 연기와 함께 솔가지 타는 냄새가 사랑부엌에 향긋하게 퍼진다. 그 위로 장작 몇 개를 올리면 타닥타닥 장작이 타들어간다. 불똥 튀는 소리에 놀란 강아지가 꼬리를 감추고 물러난다. 하늘에 눈꽃송이는 나폴나폴 등고선을 그리며 더 멀리 물러난다. 뒷동산에서 들려오는 마른 바람소리도 허허롭게 달아났다. 매운 연기가 나를 에워쌓지만 꼼짝없이 앉아 남은 장작을 다 태워야만 했다. 돌팍재 마을은 장작 타는 소리와 함께 집집마다 굴뚝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외양간의 맑은 워낭소리와 함께 찬란한 나의 꿈도 따라 피워 올랐다. 아궁이에 장작불이 사그라지는 시점에 고구마를 묻어야 할 때가 왔다. 아래채 고방에 달려가 고구마 서너 개를 들고 나와 불구덩이 속에 던져 놓는다. 초저녁 저녁식사를 마치고 속이 출출해 질 무렵, 속이 노랗게 익은 군고구마를 반으로 뚝 잘라 입에 넣으면 향긋한 솔가지 냄새가 입안에 가득 찼다. 가족들과 뜨끈뜨끈한 온돌방에서 군고구마를 먹는 즐거움은 추운겨울이 이겨내고 그 추억은 힘이 되었다.

김민정 수필가

불은 생성과 창조와 열정의 동의어이다. 군불을 보면 과거 속에서 소환되어 현재에서 정신적 가치로 변환되어 힘찬 의지를 드러나게 해준다. 군불을 지피며 살아가는 사람을 본다. 오지를 다니며 의료봉사를 하는 K박사님, 산골 할머니들의 한글을 깨우치기 위해 재능기부를 하는 P여사님, 창업동료가 세상을 뜨자 그의 자녀들의 학비를 감당하고 있는 L사장님, 군불 같은 같으신 분들을 볼 적마다 생의 구심점과 궁극적인 지향점이 과연 무엇인가를 일깨워주고 세상을 환기시켜 주심을 느낀다. 군불이 방을 덥히고 화롯불이 불씨가 되듯 세상의 군불이 되어 사랑과 나눔의 봉사로 행복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이들이야말로 내 삶의 이정표가 되고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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