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처럼 40년 사랑… 3천편 논문엔 세계최고 성과도

한천구 청주대 건축공학과 교수가 지난 14일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하며 "3천편의 연구업적에는 비슷한 것도 있고, 형편없는 것도 있지만 세계최고의 연구성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 김금란

[중부매일 김금란 기자] '콘크리트 박사'로 불리는 한천구 청주대 건축공학과 교수(65)는 정년퇴임 전 연구업적 논문 3천편 내는 것을 목표를 세웠고 정년 8개월을 앞두고 그 목표를 달성했다.

이는 청주대학교 건축공학과 건축재료·시공연구회(이하 연구회)가 창립된 지 37년 만에 이룬 성과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건축업계의 설명이다.

지난해는 연구회에서 1년 동안 200편이 넘는 연구논문이 나왔다. 이틀에 한번 꼴로 논문을 낸 것이다. 일반사람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한 교수는 이를 수치로 증명했다.

건축공학과 4학년 졸업생이 학부졸업논문 20편과 시공기술대전 논문 20편을 냈다. 석사과정 대학원생 7명은 봄·가을 학술발표대회에서 1인당 20편씩 총 140편의 연구업적을 논문에 실었다. 또한 박사·학회지·국제논문 등 20여 편 이상이 발표됐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혹자는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의미 없게 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경영 내지 통솔의 문제로 혼자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을 얼마나 끌고 갈 수 있는가 더 중요하다"며 "3천편의 연구업적에는 비슷한 것도 있고, 형편없는 것도 있지만 세계최고의 연구성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 일례로 지난 2009년 고성능 콘크리트 개발로 교육과학기술부의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됐다. 초고층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콘크리트가 폭발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연구를 하던 중, 우연히 '불에 약한' 폴리프로필렌(PP) 섬유와 나일론(NY) 섬유를 일정한 비율로 콘크리트에 섞으면 내구성과 내화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을 발견해 연구성과로 결실을 맺었다. 한 교수와 연구회는 관련기술에 대한 국제특허를 출원했다.

지난 10일 청주대학교 이공대학 건축공학과 건축재료시공연구실이 연구업적 3천편 돌파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 청주대학교 제공

연구회는 지난 10일 2017년도 정기총회를 열고 연구업적 3천편 돌파 기념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서는 1년간 수행한 연구업적을 정리하고, 졸업하는 학부연구생에게 공로상을, 석·박사를 취득한 대학원생에게는 축하패를 전달했다.

청주대 건축재료·시공연구회는 한 교수가 모교인 청주대학교에 부임한 1981년 이전에 창립됐다. 초창기에는 유명무실했으나 한 교수의 노력으로 연구실 체계를 갖췄고 학생들과 함께 지난 2003년 1천편, 2010년 2천편에 이어 지난해 연구업적 3천편의 대기록을 세웠다.

한 교수는 제자들을 위한 연구환경 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지난 40년동안 학생 지도를 위한 좌우명으로 ▶학생이 콘크리트에 관심을 갖도록 흥미를 유발한다 ▶연구테마는 가능한 실무와 연결시킨다 ▶연구비는 학생들 몫이다 ▶연구와 관련된 것은 기록으로 남겨둔다 ▶좋든 안 좋든 버리지 말고 가능한 모두를 논문으로 남긴다 ▶학생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주고 졸업 후 취업을 책임진다로 정하고 실천해 오고 있다.

 

정성봉(왼쪽)청주대 총장과 한천구 건축공학과 교수가 지난 12일 학내에서 발전기금 기탁식을 가진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청주대학교 제공

지난해 연구회 수입은 2억5천만원이 넘는다. 이 중 1억6천여만원을 대학원생 등록금, 실험비, 장학금 등으로 지급했다. 또한 학생들이 연구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자신의 외부 강의료까지 연구비로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제자·후배 사랑은 학교발전기금 1억원 기탁으로 이어졌다.

한 교수는 훌륭한 제자를 키우기 위해서 연구 못지않게 제자들과의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연구회 자체 수입·지출관련 금전문제는 경력단절 기혼여성을 파트타임제로 고용해 관리하고 있다.

한 교수는 "초창기 많은 어려움이 있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며 "지금은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만 학생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학교를 다니고 꿈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 교수는 교육자의 본분에 대해 학생 교육, 학문 연구, 사회봉사 등을 꼽았다.

그는 본분을 다해 제자들을 길러냈다. 그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생이 100여명 이고 석사, 학부 졸업생 등을 합치면 500여 명이 넘는 그의 제자들이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교수로서의 연구업적은 더 이상 거론의 여지가 없고, 사회봉사와 관련해서도 외부의 기술교육·자문, 집필 등 적극 지원하고 있다.

정년을 앞둔 한 교수는 저서를 집필중이다. 가제목은 '내 사랑 콘크리트'다.

건설공사를 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재료가 콘크리트다. 그가 콘크리트를 처음 접한 것은 석사과정에 들어가면서 지도교수의 권유로 시작됐다. 65년 살아오면서 40년을 콘크리트와 관련된 연구를 해오고 있다.

'내 사랑 콘크리트'는 인생과 콘크리트와의 관계를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재미있고 쉽게 풀어썼다.

한 교수는 50꼭지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 중 한꼭지인 '황소 뒷걸음질 치다 소 잡는다'를 소개했다. 이 속담은 우연을 빚대어 하는 말로 과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황소가 뒷걸음질하다 쥐를 잡을려면 첫째는 쥐가 많아야 한다. 둘째는 황소가 움직여야 한다, 여기서 쥐란 연구프로젝트 내지 연구대상이고 황소는 연구자이다. 할수 있는 것이 많아야 하고 열심히 할 때 쥐를 잡는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콘크리트에 대한 그의 사랑과 열정을 담았다.

한 교수는 "이제 인생 1막을 마치고 2막을 여는 시점이다. 남들은 평생을 바쳐해온 일이 진저리 나서 훌훌 털어버린다고 하는데 40년 동안 애인처럼 사랑했던 콘크리트를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생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도 콘크리트를 사랑하고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그의 아들은 진주 경상대학교 건축과 교수로 콘크리트 분야를 가르치고 있다.

한 교수 부자의 대를 이은 '콘크리트 사랑'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