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 이야기] 청주 각리초등학교 수석교사 박현숙
2월에 이렇게 굉장한 한파가 찾아 온 것은 내 삶의 기억으로는 처음인거 같다. 봄소식을 몰고 오는 입춘절기가 무색하듯이 동장군의 기세가 거세기만 하다. 그런 와중에도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식이 성공리에 치러지고 세계인의 관심이 '코리아 평창'에 집중되고 있다. 이 모든 게 더 나은 미래로 가는 성장의 발돋움이 아닌가 생각된다.
2월의 학교는 대부분 싱숭생숭하다. 새로 담당할 학년, 새로 만날 아이들, 새 업무 등의 생각으로 마음이 평온치 못하다. 여러 가지 주변 여건과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는 2월이지만 참 중요한 시점이 2월이라는 생각이다. 새 학년을 맞이할 1년을 설계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재구성, 학급 운영계획 등으로 바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어떤 철학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만날까? 구상을 하는 것이다.
한 달 전 싱가폴에 다녀왔다. 첫날 내가 받은 느낌은 한마디로 정제된 도시였다. 깨끗하고 반듯하고 질서정연했다. 현대적 건축물의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고 교통 시스템이 편리했다. 우리나라에도 버스나 전철에 노약자석이 있듯이 싱가폴에도 잘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버스에 탔을 때 참 놀라운 장면을 보았다. 휠체어에 탄 승객이 내리는데 버스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려 손수 휠체어를 내려주는 것이었다. 휠체어가 잘 굴러가도록 슬라이딩 계단도 놓아주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시간 끄는 그 상황에 누구 한 사람 항의하거나 눈살 찌푸리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나라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일상인거 같았다. 버스의 승하차문은 휠체어나 노약자가 타고내리기 쉽게 지면과 거의 수평으로 되어 있었다. 버스의 앞좌석은 어르신들이 앉는 것 같고 버스의 뒷부분은 좀 높게 의자가 설치되어 있어서 젊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 광경을 보고 '그래,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짧은 역사, 작은 국토를 가지고서도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따뜻한 배려, 모두 함께 잘 살아가는 정신 교육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우리가 아이들을 교육할 때 가장 기본적인 철학은 모두 함께 잘사는 것이다.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니고 나만 100점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함께 잘 살도록 돕는 아이들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고 우위에 서길 바란다. 그래서 협력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힘이 좀 부족하다. 수업시간에 "저요! 저요!" 외치며 자기만 발표하기를 원하는 친구들이 많다. 자기만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왕자가 되어야 하고 공주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회문화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협력하며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는 어렵다.
아프리카에 '우분투'라는 말이 있다. 어느 인류학자가 맛있는 과일이 가득 들어있는 과일 바구니를 나무에 매달아놓고 마을 아이들에게 게임을 제안하다. 1등으로 달려간 아이가 과일 바구니의 과일을 모두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잠시 후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뭔가 말을 주고받더니 모두 함께 손을 잡고 한 줄로 나란히 서서 달려가는 것이었다. 결국 아이들은 모두 다 함께 과일을 맛있게 먹었다. 1등하면 혼자 다 먹을 수 있었는데 어째서 모두 손을 잡고 같이 달려갔지? 라는 물음에 "나만 먹으면 다른 아이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분 좋을 수가 있겠어요?"라고 답한다. 그렇게 마음을 울리는 가슴 따뜻한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이 진정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UBUNTU'는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 라는 뜻이다.
2월에 우리 선생님들은 1년 교육살이의 초석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굳게 다졌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함께 잘 살기, 혼자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행복해지기, 그 초석 위에 우리 교사들은 그런 아이들로 키우고 살리는 에너지를 힘차게 불어넣어야 하겠다. 그걸 생각하면 아직 바람은 맵지만 2월의 바람 속엔 여전히 기대와 설렘이 묻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