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택 作, '분단의 향기 36-12. 2004'

노순택 作, '분단의 향기 36-12. 2004'

남한 최북단인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통일전망대에서 어느 가족(?)이 사진기를 들고 있는 남자를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다. 그 가족은 금강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마도 그 사진은 가족과 어렴풋이 보이는 금강산을 배경으로 촬영된 사진으로 인화될 것이다.

그런데 노순택은 바로 그들(사진 찍히는 사람과 찍는 사람)을 모두 카메라에 담았다. 아니다! 그는 그 가족뿐만 아니라 통일전망대의 '상업성 문구' 또한 놓치지 않았다. 사진기를 들고 있는 남자 위에는 아치형으로 제작된 판에 '이곳은 영업장소입니다!'라고 적혀있고, 그 밑에 '우리의 역사와 마음을 담아 가세요'라는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다. 왜 노순택은 그 풍경을 포착한 것일까? 그는 그 사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해 놓았다.

"멀리 금강산이 자태를 뽐내다. 금강산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을 배경으로. 찰~칵! '이곳은 영업장소입니다. 우리의 역사와 마음을 담아 가세요.' 분단을 기념하기 위해 돈이 필요함을 깨닫다. 볼 수 있다면 가질 수 있다. 자세히 보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분단. 영업의 철학을 생각하다. 2004. 7. 30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

통일전망대 설립목적은 '접적지역, 6·25격전지 등 활용 가능한 곳을 관광지로 개발' '국민여가 선용을 겸한 안보계도 및 통일의지 고취' '원활한 사업 수행을 위한 재원확보'라고 한다. 따라서 통일전망대는 멸공관(안보교육)과 전망대(관광사업)로 구분되어 있다. 1층 멸공관은 3개의 방(민족의 얼/멸공의 의지/통일을 향한 전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6·25전쟁 당시부터 현재까지의 각종 무기와 장비, 금강산의 대형 모형·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2층 전망대는 120석의 좌석이 있고, 전망대 북쪽 면은 모두 유리창으로 만들어 북한의 금강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물론 통일전망대는 '영업장소'란 점에서 입장료도 받는다. 노순택은 '분단'을 단지 '정치'로 국한하지 않고 '돈(경제)'로도 확장시킨다.

노순택 왈, "통일전망대의 망원경은 '북한의 모든 것을 입체영상으로 보여주겠다'고 선전하지만 그 모습은 남한체제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뿐이죠. 또 통일전망대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야하는데, 분단을 이용한 영업행위는 록히드마틴과 같은 거대 군산복합체의 영역일 뿐 아니라 아주 작은 영역에서도 이뤄진다는 것을 의미하죠. 한 마디로 블랙코미디죠."

그동안 '분단'은 거대한 서사시, 즉 '참을 수 없는 무거움'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노순택은 그 '분단'을 손가락 운동을 통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자리바꿈시킨다. 물론 그 손가락 운동은 '삐딱하게 보기'를 관통했을 때 가능케 된다. 흥미롭게도 삐딱하게 본 '분단'은 하나가 아니라 '도플갱어(Doppelgaenger)'로 나타난다.

도플갱어? 'Doppelgaenger'는 독일어로 '이중으로 걷는 자' 또는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로 직역된다. 그것은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자신과 똑같은 대상을 보는 현상을 뜻한다. 오늘날 도플갱어는 일종의 정신질환, 즉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나타나는 도플갱어가 자신의 실제 성격과 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평소 자신이 바라던 이상형 혹은 그 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던 노순택의 사진들은 같은 공간과 시간에 등장한 사람들(남북한 어린이들/미순이와 효순이/국방군과 인민군)을 포착한 것인데, 그들은 한결같이 '이중'의 의미로 열려져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안보'와 '상업'이라는 이중의 뜻을 지닌 통일전망대처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다는 실제 성격과 다른 성격(때로는 반대의 성격)도 지닌다고 말이다. /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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