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미영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누구나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엄마가 되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엄마의 희생을 얼마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지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은 희생에 대한 댓가를 청구할 대상도 없다, 사실 엄마들 스스로 누군가에게 댓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세상에 공짜가 없는 법인데. 마트에서 생수박스하나 제대로 못들던 사람이 생수박스 보다 훨씬 무거운 아이를 한 손으로 안고 서서 한 손으로 밥을 먹는다. 또 엄마들은 아이의 밥을 떠먹이느라 정작 본인은 미처 씹지도 않은 음식을 꾸역꾸역 삼키고, 심지어 이마저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인스턴트 커피 한잔으로 당분을 조달하기도 한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누가 차려준 식탁에 앉아 가지런히 놓여진 수저를 집어 들고 밥을 먹는 것이 얼마나 큰 호사인지 알게 된다. 오죽하면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차려준 밥'이라는 말이 있을까.

엄마들은 명절에는 더욱 그 능력을 발휘한다. 평소 어린 자녀만 보살피다가 명절에는 다 큰 어른들도 함께 보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명절 연휴가 되면 '휴'라는 글자가 무색하게 더욱 극심한 노동에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긴 연휴가 끝나면 그동안 쌓여있던 회사일·집안일에 다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엄마들은 늘 다른 사람을 먼저 챙기다보니 '자기자신'을 후순위로 미루곤 한다. 엄마들은 자신의 마음과 몸을 살필 여력도 없고, 사실 '아프다'고 해도 어쩔 수 없으니 '그냥 아프면 안된다'를 신념으로 알고 산다. 그런데 그런 엄마보다 더 빨리, 더 쉽게 후순위로 밀려나는 존재가 있다. '엄마'가 아니라 '친정'이라는 단어를 접두어로 다는 순간 후순위로 밀려나는 존재가 된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못한 '친정엄마'가 간단한 한글 문서 한 장 작성해 인쇄해 달라고 하는 요청은 수 개월째 미루면서, 시어머니가 요청하는 자동차보험가입은 생글생글 웃으며 바로 한다.

그리고 친정엄마에게는 회사와 명절에 받은 스트레스, 심지어 남편·자녀에게 받은 스트레스까지 그대로 표현한다. 심지어 한껏 부풀려 짜증을 내곤 했다. 그래도 친정엄마들은 딸이 말도 안되는 짜증을 내고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아도, 그저 친정엄마가 차려주신 밥 한공기만 뚝딱 잘 먹으면 그걸로 괜찮았다. 필자 역시 친정에만 가면 철없는 딸로 변신한다.

이미영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지난 명절 친정엄마가 이쁘게 깎아 내어주신 과일을 집어 내 아이의 입에 쏙 밀어넣고, 오물오물 씹어먹는 모습이 귀여워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우연히 사진 모퉁이에 친정엄마의 모습이 찍혔다. 사진속의 친정엄마는 내가 알고 있던 엄마가 맞나 싶게 더 늙어 보였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 부엌에 서서 딸, 사위 저녁 준비를 하느라 부산히 움직이고 있는 친정엄마를 봤는데, '엄마 등이 원래 그렇게 좁고 굽었었나'하면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다시 휴대전화 속에 수많은 사진을 넘기면서 엄마 사진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신기하게도 아들 사진은 셀 수도 없이 많은데 엄마를 정면으로 찍은 사진은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다. 필자는 어쩌면 '늘 젊고, 강한 엄마'라는 필터를 끼운 채 친정엄마를 인식하고, '늙고, 약한 엄마'는 애써 못 본 척한 것 같다. 오늘은 모두 '친정엄마'랑 다정스럽게 사진도 찍어보고, 단 하루라도 친정엄마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소중히 생각해보는 것을 어떨까.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