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수갑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예전에 우리 대학의 한 원로께서는 '원래 일, 일, 일 하는 사람(者)은 일을 잘 못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돈, 돈, 돈' 하는 사람이 항상 가난하게 사는 것처럼 '일, 일, 일' 하는 사람들도 일을 못하는 법이란 것이다. 워낙 유유자적하는 분이라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말이겠거니 생각하고 흘려들었다. 일을 쉽게 하는 스타일이니 일에 매달려 있는 시간이 적었고, 그분은 그래서 놀기만 한다는 비판도 받으셨다.

그런데 해가 거듭할수록 신통하게도 그 말이 들어맞았다. 외부에서 돈을 따와야 한다고 교수들이 성화를 부려도, 그는 아무 돈이나 먹으면 동티가 나는 법이라 하며 아무 사업에나 숟가락을 얹지 않았다. 특히 대학에서 대응자금을 많이 내야하거나 정원감축과 같은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업은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곁눈도 주지 않았다. 정원감축은 언감생심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대응자금은 대학 전체예산에서 지출되는 것인데, 그 돈을 내서 사업을 따오면 일부에게만 혜택이 가게 되니, 결국 전체의 희생으로 일부를 먹여 살리는 꼴이라고 했다.

일부 교수들의 볼멘소리도 있었지만 원로는 아무 사업에나 손을 뻗치지 않았고, 그 결과인지 신통하게도 해가 갈수록 대학의 살림살이는 점점 나아졌다. 형편이 좋아지니 대학의 복지도 좋아졌고, 구성원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특히 외부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자체 프로그램에 따라 대학을 운영하니 '대학의 균형 발전'을 기대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 때가 좋은 시절이었다면, 그 이후부터 정부가 대학을 들볶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재정지원 사업 자격을 박탈하고,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대학을 뽑아 대학운영에 직접 관여했다. 대학의 장들도 용빼는 재주가 없으니 그저 정부의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언감생심, 결국 대학의 자율성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

이럴 경우 손해를 보는 건 구성원, 특히 학생들이다. 교수와 직원들은 온통 평가와 감사에 시달리느라 학생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대학은 '일, 일, 일', '돈, 돈, 돈' 하면서 피곤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이상한 것은 전보다 사업비를 많이 따오고 일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원로 교수의 지론대로 일이 되는 건 없고, 살림살이도 나빠져서 급여도 제 때 주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여유롭고 즐겁게 보내던 때에 비해 되는 일도 없고 살림도 궁핍해지고 말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러셀이라는 철학자가 말했다. 돈을 잃으면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아니고, 명예를 잃으면 절반을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모두를 잃은 것이라고.

지금의 대학사회는 돈, 돈, 돈 하면서 살고 있다. 건강은 물론이고 명예와 자존심도 팽개치고 오로지 돈에만 혈안이 돼 있으니 건전하다 할 수 없다. 돈만 되면 체면이나 염치도 다 팽개치고 껄떡대는 사람이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돈만을 좇느라 자존심도 명예도 팽개친 조직도 존중 받을 수 없는 법이다.

김수갑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돈이 없으면 살기 어렵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대학이 명예와 자존심을 버려가면서까지 돈, 돈, 돈 하면서 살 수는 없고,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된다. 돈 + 명예(자존심) + 건강이 잘 조화되어야 건전한 조직이 될 수 있는 법이다. 특히 명예를 버려가면서까지 돈을 추구하는 건 성숙한 인격체나 조직에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원로 교수의 말처럼 돈, 돈, 돈 하는 사람은 부자로 살 수 없고, 매일 일에만 치여서 사는 사람도 일을 잘 할 수 없다.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며 여유를 즐기고, 성실히 해야 할 일만을 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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