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괴물
시인과 괴물
  • 박상준 기자
  • 승인 2018.03.05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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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시인 고은 / 뉴시스

국내 문화계에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운동을 촉발시킨 '시'가 있다. 최영미 시인의 '괴물'이다. 작년 말 '황해문학'에 실린 시는 '미투운동'으로 새삼 주목 받았다.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중략>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적나라하고 통렬한 비판이다. 젊은 여자만 보면 몸을 더듬고 유부녀 편집자도 주무르는 늙은 시인의 추악한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도심의 공원주변이나 시골의 지하 음습한 다방에서 '쌍화차' 두잔 시켜놓고 자식보다도 어린 '마담'과 '레지(다방종업원)'의 가슴과 허벅지를 더듬는 동물적 본능에 충실한 노인과 다를 게 없다.

'괴물'의 주인공인 시인 고은(85)이 오랜 침묵을 깨고 어저께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의혹이 제기 된지 거의 한 달여 만이다. 노벨상 만년후보답게 국내 언론이 아니라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에 실렸다. 그는 "최근 (성추행) 주장에 내 이름이 언급된 것이 유감스럽다"며 "나의 행동이 일으켰을 의도하지 않았던 고통에 대해선 이미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그러나 어떤 개인들이 나에 대해 주장한 습관적인 성추행 의혹은 단호히 부인 한다"고 강조했다. 가디언지는 현지 출판사 블러드액스 북스(Bloodaxe Books)의 고은 담당자 '닐 아슬리'를 통해 받은 고은의 성명서 내용을 보도한 것이다. 고은은 "현재로서 할 수 있는 말은, 내가 사람과 시인으로서의 명예를 유지한 채, 나의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라 믿는다는 것이다"고 밝혔다. 누가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내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세상이 그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럴 만도 하다. 그는 오랫동안 문단권력의 정점(頂點)에 있었다. 정치권력도 머리를 조아리고 언론도 함부로 못했다. DJ정권 때는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의 뜻에 거슬리는 작가는 문예지에 실리지 못하고 출간조차 힘들었다. 문단권력자에게 여류작가와 여성편집자는 떡 주무르듯이 주물러도 되는 쾌락의 대상일 뿐이다. 강요된 복종을 자발적인 동의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다수의 문인들이 참석한 술자리에서 '자위행위'를 했다는 놀라운 증언도 보도됐다.

물론 그를 옹호하는 사람도 있다. '문학과 지성' 설립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병익은 "고은 시인은 얌전한 한국시단에서 돌출적인 존재이고 시인의 역사에서 존중돼야한다"고 주장했다. 예술가라는 관점에서 봐달라는 것이다. 아직도 김병익 같은 논리를 가진 사람들이 문단에는 적지 않다. 하지만 가해자의 시각일 뿐이다. 작가 이전에 우월적인 위치에 있는 자의 논리다. 권력에 기댄 약자에 대한 폭력이다. 변태행위를 기행(奇行)이나 예술혼으로 포장한다고 빼어난 작품이 나온다면 세상은 혼탁해 진다. 돌출적인 시인을 위해 여성들의 인격과 존엄은 짓밟혀도 괜찮다는 것이냐는 반발이 당연하다. 연출가 이윤택의 연극이 그렇듯 고은의 작품이 훌륭한지는 모르겠으나 시인이 드러낸 성적욕망은 듣기도 읽기도 불편하다. 성추행의 잣대가 모호한 과거의 관행이라도 지금기준으로는 범죄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성추행 의혹을 부인하고 명예를 유지한 채 글쓰기를 계속하겠다고 한다. 노추(老醜)이고 노욕(老慾)이다. 대중들이 보는 그를 보는 시각은 변했다. 서울시가 그의 문학관인 서울도서관내 '만인의 방'을 철거하고 교과서에 실린 그의 작품들이 제외되는 것은 부차적이다. 작품은 먼 훗날에도 평가를 받겠지만 자신의 행태에 부끄러움도, 가책도 못 느낀다면 인격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명망 있는 작가는 위법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초법적인 윤리의식이 엿보인다. 떳떳하다면 국내언론에 공개적으로 밝혔어야 했다. 그는 여전히 당당하다.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자신의 정당성만 주장한다. 대가(大家)의 명예에 대한 집착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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