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 이야기] 김창식 충북과학고 수석교사

/ 클립아트코리아

후한을 세운 광무제는 과부가 된 누님 호양공주가 새롭게 가정을 이루길 원했다. 호양공주가 신하인 송홍을 마음에 두고 있음을 알고 고민에 빠졌다. 송홍이 유부남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송홍은 누구보다 청렴하고 인재를 보는 눈이 있으며 또한 성격이 강직하여 황제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 사람이었다. 호양공주의 연정이 성사될 리가 없지만 광무제는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었다.

"사람이 귀하게 되면 친구를 바꾸고 부귀를 얻으면 아내를 바꾼다는데 어찌 생각하는가?"

광무제가 병풍 뒤에 호양공주를 숨겨두고 넌지시 물었다.

"가난할 때 사귄 친구를 잊어서는 안 되며, 고생을 함께 한 아내를 버려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제 벼슬이 올라 부귀를 누린다고 해서 술지게미와 쌀겨를 함께 씹어 먹던 아내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송홍은 주저 없이 '빈천지교 불가망 조강지처 불하당'을 들어 거절했다.

조는 술지게미를 뜻하고 강은 쌀겨를 뜻하며, 몹시 거친 음식을 의미한다. 조강지처란 쌀겨나 지게미와 같은 거친 식사로 끼니를 이어가며 어려운 시절을 같이 살아온 아내를 말함이다. 광무제는 송홍이 조강지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호양공주를 시집보내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아내가 아침 여섯시에 운동하러 갔다가 넘어져 정강이와 발목 사이가 부러졌다. 황당하고 슬펐지만 침착하게 구급차를 불러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단순 골절이 아닌 복합 골절이란다. 응급조치를 하고 오후에서야 수술을 했다. 대학 졸업 후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딸과 아들에게 수술이 끝난 후에야 아내의 골절 수술을 알렸다. 이튿날 딸과 아들이 왔다갔다.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니 간병은 내 몫이다. 출근하였다가도 화장실에 가야한다는 문자를 받으면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밤에는 입원실의 아내 곁에서 잤다. 병원에서 두 주를 보내고 아내는 다리에 깁스를 하고 퇴원 했다. 거동이 불편하여 식사준비나 기타 가사활동은 내 몫이다. 수족이 있으나 자유롭지 못한 아내가 안쓰러웠다.

출근하는 도중에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이 내 생일이란다. 며칠 전에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잊었단다. 출근하기 전에 축하해주지 못하여 미안하단다. 딸과 아들에게서 생일 축하의 문자가 왔다.

물리치료를 위해 병원에 함께 가야 했으므로 점심시간에 집으로 갔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 보니 미역국과 잡채가 밥상에 차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아내가 거동이 어려운 불편한 몸으로 음식을 만들어 생일 밥상을 차렸다. 아내를 나무랐다. 마침 오전에 정수기 코디가 왔단다. 코디에게 부탁을 했더니 음식에 필요한 재료들을 사다주더란다. 참 고마운 코디다.

김창식 충북과학고 수석교사

둘이 겸상을 하고 앉았다. 아침에 내가 해놓은 밥에 미역국과 잡채만 더한 밥상이지만 기쁘고 행복한 겸상이었다.

조강지처와 빈천지교. 설레는 마음 애틋한 감정 삭았어도 늘 믿고 의지하며 그 자리에 있는 처와 어렵고 힘들 때 함께 했던 친구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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