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계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03.08. / 뉴시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인권전담 독립기관이다. 인권보호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치를 구현한다는 역할을 갖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고통을 당해도 제대로 하소연할 곳이 없는 사회적 약자에겐 기댈 언덕이 될 만한 기관이다. 하지만 이런 인권위에서도 직원이 성추행을 당하고 성범죄자인 가해자는 여전히 근무하고 있지만 피해자는 직장을 떠난 일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런 기관이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간판을 버젓이 달고 있다. 최근 유력 대권후보인 광역자치단체장이 비서 성추행으로 하루아침에 몰락할 만큼 위선과 기만이 난무하는 혼탁한 사회지만 인권위의 사례는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기관에 대해 인권침해를 개선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권위 내부의 성추행 사건도 전형적인 위계에 의한 성범죄였다. 직속상사였던 모 팀장에게 회식장소와 사무실에서 수차례에 걸쳐 성추행·성희롱을 당한 직원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추행 혐의로 팀장을 고소했다. 팀장은 부하 직원에게 '당신에게 취하면 평생을 간다', '사랑 한다' 는 말을 귀속 말로 하거나 손목과 손을 잡고는 한동안 놔주지 않았다고 한다. 법원은 이중 회식 장소에서의 추행 혐의를 인정해 팀장에게 벌금 300만원에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하라고 확정 판결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인권위는 팀장에게 감봉 1개월 징계만 한 차례 내렸을 뿐 그가 피의자 신분이던 때는 물론, 전과자가 된 지난해 5월 이후에도 다른 조치 없이 수년째 근무하도록 뒀다. 더 황당한 것은 팀장이 인권침해 피해자와 밀접하게 소통해야 하는 조사관 업무를 현재까지 맡고 있다는 점이다. 인권침해를 당한 누군가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성 범죄자에게 성추행 사실을 상담 받아야 한다. '블랙코미디'같은 상황이다. 이런 환경에서 피해 직원이 인권위에서 계속 근무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피해직원은 "재판이 진행된 2년 반 넘게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이후에도 A씨(팀장)가 인권위를 대표해 브리핑이나 토론회에 나서는 모습을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접할 때마다 극심한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성호 위원장은 인권위 홈페이지에서 "특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편에서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할 것"고 밝혔다. 하지만 전혀 신뢰할 수 없다. 조직 내 성추행 피해로 분노와 고통을 느끼는 직원도 보호해주지 못하면서 국민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것은 사탕발림 같은 소리다.

비단 인권위뿐만 아니다. 청와대는 '남자마음사용설명서'라는 책에서 '여자가 탱크톱을 입는 것은 남자 입장에서 테러를 당하는 기분' '여자는 이왕 입은 짧은 옷 안에 뭔가 받쳐 입지 마라'는 표현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탁현민 선임행정관을 감싸고 있다. 여권 유력정치인인 안희정 전충남지사와 정봉주 전국회의원등이 성추행의혹에 휩싸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아무리 '미투(#MeToo)' 운동 지지를 밝혀도 진정성을 의심받은 것이다. 인권위가 규정만 내세워 성 범죄자를 옹호한다면 불신만 초래하고 기관의 위상만 추락시킬 뿐이다. 인권위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자정작업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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