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껭끼데스~ (잘 지내나요? 전 잘 지낸답니다.) 눈 덮힌 끝없는 설경에서 몽환적이고 아련한 느낌을 주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울림을 주었던 영화 러브레터, OST 피아노 선율과 특유색체의 분위기는 20여 년 전 졸린 눈으로 그 영화를 보기 시작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두 눈이 더욱 또렷하게 울림을 주었던 영화였다. 러브레터 영화로 유명한 오타루, 20여 년 동안 마음을 통한 시골 초등친구 스물다섯 명이 이곳에 섰다. 3월 초인데도 체감온도는 영하 30도를 넘는 추위가 두터운 다운점퍼 속을 파고들었다. 온통 하얀 눈이 뒤덮인 그야말로 겨울 왕국이었다. 온몸을 날려버릴 듯한 한파 속에서도 오타루 운하는 유유히 흐르며 쏟아지는 눈꽃송이를 녹여 내고 있다. 오타루는 일 년 중 절반을 겨울이 차지하며 은빛설국으로 변신하여 눈빛거리축제로 들썩인다. 축제가 끝난 거리에는 아직도 환상적인 빛이 감도는 듯했다.

오타루 운하를 지나 오르골당 거리를 걸었다. 이길 위에서 영화 '러브레터'와 조성모의 '가시나무새'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고 하니 걷고 있는 내게도 귀한 인연을 만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가는 곳마다 영화의 흔적을 볼 수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는 세계각국의 오로골 판매장으로 들어섰다. 넓은 매장 안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로골이 진열되어 각각의 소리를 담고 있었다. 테엽을 감으면 영롱한 음악과 함께 빙빙 돌아가는 모습으로 묘한 매력을 발산했다. 아기자기하고 영롱한 오로골의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동심으로 빠져들게 했다. 천국의 음악이라는 별명처럼 절묘한 오르골 음색이 오타루에 울려 퍼진다. 그냥 나갈 수 없도록 유혹하는 음악소리에 남자친구들은 딸에게 줄 선물들을 곱게 포장했다.

우리의 언어가 이런 음악이라면, 질서정연한 대위법을 배열하진 못해도 진실은 왜곡되지 않게 전해지리라는 생각에 이른다. 매장 밖으로 나오자 더 많은 눈과 바람이 눈앞을 가렸다. 잠시도 방심할 수 없을 정도로 빙판이 된 도심은 꽁꽁 얼어가고 있었다.

노보리베츠로 가는 길은 환상적이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달리는 국도변 산위에는 눈 덮힌 계곡과 자작나무 가지마다 상고대가 아름답게 피어 앙상블을 이루었다. 이색적인 풍경을 보며 우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극한 추위에 맞서는 사람들에게 선물한 진귀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심한 눈보라로 인하여 급기야 교통이 두절되고야 말았다. 다른 길로 돌아갔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호텔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잠시라도 맑은 하늘이 문을 열어 노보리베츠의 지옥의 계곡과 하루 1만 톤의 자연용출량을 자랑하는 유황천과 식염천, 명반천에서 온천을 즐기고 싶었으나 하늘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아쉬움이 많았으나 호텔 내 온천에서 즐기기로 했다.

가이드는 미안했는지 우리 일행을 발이 푹푹 빠지는 눈 쌓인 넓은 공터에 내려놓았다. 공터에는 눈이 2미터 가량 쌓여 있었다. '나 잡아봐라' 하며 사진촬영도 하고 마음껏 눈싸움도 하라며 자유시간을 갖도록 했다. 모두는 곧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짖궂은 남자친구들이 누구라 할 것 없이 한 명씩 끌어다가 눈 속에 내던지자 눈 속에 파묻혀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럽던지 모두가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그래, 이런 모습이 그리웠다. 그동안 빛바랬던 추억을 고스란히 잊고 살아왔다. 이제는 아픈 친구들 앞에서 건강한 친구가 괜스레 미안해지는 나이가 되고 보니 앞으로도 즐거운 시간이 언제 올는지 기약할 수가 없다.

김민정 수필가

살아가면서 꺼내볼 페이지가 이토록 아름답다면 조금은 불편하고 가끔은 흔들려도 좋다. 삶의 속도와 보폭을 맞추며 가는 친구들과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다시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힘을 준다. 평생 잊지 못할 홋카이도의 추억이 남은 삶에 추운 날들을 따뜻하게 녹여줄 것이다. 친구들아! 오겡끼데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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