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진단] 이민우 부국장겸 경제·사회부장

/ 중부매일 DB

선거철만 다가오면 '출판기념회'(북콘서트)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정치권에서 출판기념회가 유행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4년 정치자금법 등을 개정한 이후부터다. 기업 후원을 금지하고 후원금 액수가 제한되면서 정치자금을 모금하기 위한 편법으로 출판기념회가 등장했다. 실제 청주지역의 경우도 오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교육감·시장·기초의원 등 예비 후보들의 출판기념회가 잇따라 열려 성황을 이뤘다. 특히 지역 자치단체장·지방의회 의원·교육감 후보들의 막바지 출판기념회·북콘서트는 지난 주말 봇물을 이뤘다. 공직선거법상 출판기념회나 의정보고회를 할 수 있는 마지막 주말이었기 때문이다. 선거 출마자들의 출판기념회는 잘만 활용하면 인지도를 높일 수 있고 선거공약 홍보 수단이 되기도 한다. 또 선거운동에 제약이 많은 현실에서 유권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없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출판기념회가 합법적으로 선거 밑천을 마련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마지못해 눈도장을 찍어야 하거나 '보험'(?)을 들어야 하는 공직자나 기업인들에게는 괴로움이고 '민폐'라는 점이다. 현직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 여는 출판기념회는 참석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공직자들의 입장이 난처한 경우가 많다. 보통 책 정가에 웃돈을 얹은 봉투를 내미는 게 관행이라 여러 군데 얼굴을 내밀다보면 책값도 부담이다. 적게는 5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을 내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난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출판기념회가 음성적인 정치자금 모금 창구로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출판기념회'는 청탁금지법에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 국민권익위에 따르면 출판기념회 등에 보내는 화환 등은 10만 원으로 제한선이 있지만 책값에 대해서는 가이드라인이 전혀 없다. 선관위가 허용한 지방선거 관련 출판기념회 개최제한·금지행위 적용 시기는 3월 14일까지다. 정치인 출판기념회를 규제할 수 있는 관련법 규정은 '선거일 90일 전 금지'가 전부다. 수입내역을 공개할 필요도 없고 책값의 수십 배를 지불하더라도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선거관리위원회도 출판기념회 현장을 감시하지 않고 얼마나 모금했는지 파악도 않는다. 청탁금지법에도 출마를 앞둔 지자체장과 현역 의원 등 공직자는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으로 후원액수가 제한되지만 출판기념회 수익에 대한 규정은 없다. 논란이 일자 국민권익위원회가 자치단체장 등 공직자가 직무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의례적인 범위를 넘는 책값을 수수하는 것은 청탁금지법에 어긋난다고 밝혔으나 여전히 모호하다.

한 공무원은 "간부급이 되면 단체장이 누가 될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출판기념회를 나 몰라라 하기 어렵다"며 "출마예정자들이 전부 출판기념회를 하면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고,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당선되면 찍히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이민우 부국장겸 경제·사회부장

이처럼 선거철 정치인의 무분별한 출판기념회는 깨끗한 선거문화 정착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규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무엇보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3만원 이상 식사대접도 처벌 대상인 상황에서 출판기념회를 규제하지 않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단체장으로 올 가능성이 있는 출마예정자의 출판기념회에 해당 지역 공무원이나 관련 단체가 '성의 표시'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볼멘소리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흰 봉투 안에는 책 정가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 있고 이 금액은 낸 사람과 후보만이 알 수 있는 '검은 커넥션인 출판기념회'. 이제 정치인들이 짜깁기를 통한 형편없는 '졸필', 출판사의 컨설팅을 통한 '대필'에 불과한 책을 가지고 더 이상 출판기념회를 빙자한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폐습은 이땅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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