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와 생화
조화와 생화
  • 중부매일
  • 승인 2018.03.1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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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전국 낮 최고기온이 12~19도까지 오르는 등 완연한 봄 날씨를 보인 12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내 꽃시장에서 상인들이 형형색색의 생화와 조화를 판매하고 있다. 2018.03.12 /뉴시스

3월, 봄이 시작됐다. 곧 봄꽃들이 피어나고 나무들은 연둣빛으로 물이 오를 것이다. 낮은 제법 따듯하다. 밤바람이 좀 차지만 그래도 봄기운이 담겨 있어 참 좋다. 며칠 전 낮, 살짝 봄 냄새가 나는 가벼운 니트에 스카프로 목을 둘둘 말고 외출을 했다. 몸도 가볍고 상쾌했다. 은행에서 순서를 기다리다 본 3월호 잡지에는 봄나물과 꽃무늬가 들어간 넥타이와 옷들이 반짝였다. 책 한쪽에 '봄'이라는 글자를 작은 꽃송이로 만들었다. 봄은 '봄'이라고 말해도 좋고 입 모양도 예쁘다. '봄봄'이라고 말하면 리듬을 타는 듯해서 좋고 서로 마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그날 따로 외출했던 아내는 작은 꽃 화분을 하나 안고 들어왔다. 꽃집에 들러 사왔나 보다. 아내는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화분을 놓았다. 물만 제 때 잘 주면 연일 꽃이 핀다고 한다. 그래서 그 화분은 아내가 물을 주기로 했다. 예전에 서로 물을 안 준줄 알고 계속 주어 꽃을 죽인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꽃에 물주기를 생각하면 꼭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예전 아르바이트를 한 커피전문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금이야 커피숍이 많지만 그때는 별로 없었다. 또한 지금은 실내에 칸막이가 별로 없고 조명도 환하지 예전에는 칸막이가 꽤 많았고 실내도 어두웠다. 심지어 이름이 '블랙박스'라는 커피전문점도 있었는데 출입구 계단부터 실내도 아주 컴컴해 극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한 곳은 테이블과 의자가 모두 등가구로 된 가게였다. 1층이었지만 창문이 없었다. 문이라곤 들어오고 나가는 출입구 하나뿐이었다. 어두컴컴해 처음 들어오는 손님들은 어디가 어딘지 잘 몰라 더듬더듬 거렸다. 그래도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싱싱한 꽃 화분과 벤자민 나무 화분이었다. 영업시간이 끝나면 음악을 틀어 놓고 청소를 했다. 꽃과 나무가 어찌나 예쁜지 난 물을 잘 주었다. 특히 벤자민은 물 담은 스프레이로 정성스레 칙칙, 뿌려 잎사귀 하나하나를 닦아 주곤 했다. 그런 정성 때문인지 꽃은 늘 화사했고 나무 또한 아주 싱싱했다. 얼마 후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들어왔다. 난 카운터를 보게 되었고 화분에 물주기는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맡았다. 늘 청소할 때면 안 계시던 사장님이 그날을 함께 있게 되었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어머머, 여기다 물을 주면 어떡해." "왜요? 우리가 물을 잘 주어 늘 싱싱하기만 한데요." 결론은 그 화분의 꽃과 나무는 가짜였다. 사장님은 손전등으로 그 화분들을 비추었고, 곰팡이가 핀 것처럼 얼룩덜룩해 있었다. 그때는 담배를 얼마나 피우던지 화분에 담긴 꽃과 나무가 금방 시들해져 조화를 놓았던 것이다. 가짜라면 안 좋은 선입견이 있지만 꽃과 나무는 예외다. 특히 꽃은 요즘 기술이 얼마나 좋은지 생화와 조화가 헷갈릴 정도다. 한겨울에 가끔은 목이 긴 유리병에 조화 한 송이나 자잘한 조화를 꽂아 놓아도 보기가 좋다. 우리 집에도 조화 한 묶음이 있다. 작은 아이가 한 시상식에서 받은 것이다. 당시 생화가 더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난 후 조화 꽃다발을 볼 때마다 작은 아이가 상을 받고 기뻐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아이는 컸지만 그 조화 꽃다발을 볼 때마다 어릴 적 아이의 순수한 모습이 떠올라 참 좋다.

가짜 중에서 사랑을 많이 받는 것이 꽃이 아닐까 싶다. 조화건 생화건 어쩌랴. 누군가의 기쁨이 된다면, 나만의 기쁨이 된다면 그 보다 더 좋은 봄날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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