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17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열린 '채용비리 근절을 위한 공공기관 회의'에서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 채용담당 임원들이 채용비리 근절 서약서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앞으로 채용비리 감사대상을 산하 공공기관을 넘어 유관기관으로 확대한다. 현재 산자부는 산하 공기업 16곳, 준정부기관 15곳, 기타 공공기관 10곳 등 41개 공공기관을 두고 있다. 2017.10.30.

한국가스안전공사가 공공기관 중 처음으로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에 나서 억울한 탈락자 8명을 올 하반기에 채용키로 했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당연한 수순이다. 이번 조치는 채용비리 연루자를 퇴출하고 피해자를 구제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른 것이다. 구제 대상자를 정할 때 핵심 근거가 된 것은 채용 과정에서 부당하게 순위가 뒤바뀌는 바람에 탈락한 이들을 특정한 공소장과 확정 판결문이다. 이번 가스안전공사의 조치에 따라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실력은 있지만 돈 없고 배경이 없어 탈락한 지원자들이 뒤늦게 채용의 기회를 얻는 사례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피해자 구제로 이번 공공기관 채용비리 사태를 매듭짓는 것은 미봉책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채용절차를 만들지 않는 한 특혜와 불법은 언제든 되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공기업·준 정부 기관의 경영 및 혁신에 관한 지침 등 9가지 지침을 '공기업·준 정부 기관의 경영에 관한 지침'으로 통폐합하면서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 방침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채용비리가 발생한 공기업·준 정부 기관은 해당 채용비리로 인한 피해자를 파악해 구제 방안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이를 위해 채용 단계별로 예비합격자 순번을 부여하고 불합격자 이의 제기 절차를 운영키로 했다.

공공기관은 흔히 '신의 직장'이라고 불린다. 연봉은 높고 정년 때까지 신분이 보장되는 안정된 직장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채용경쟁이 치열하다. 바른 인성과 실력으로 무장한 우수한 인재들이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한다면 조직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 하지만 특정인이 규정과 절차를 무시한 채 특혜채용이 된다면 열심히 스팩을 가꾸어온 많은 젊은이들이 좌절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조직의 발전에 저해요인이 된다. 이 같은 사례는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로 자리 잡았다. 지난 1월 정부는 공공기관·단체 현직 사장과 임직원 중 채용비리에 연루돼 해임된 사람이 274명에 달한다고 발표한바 있다. 공공기관 채용시장도 검은 커넥션으로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된 것이다. 고려시대 문벌귀족의 자제에게 무시험으로 관리가 되게끔 한 음서제도가 아직도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넘어 충격을 받은 국민들이 많다. 오죽하면 은행의 채용비리를 조사하는 금융감독원의 최고책임자도 채용비리 의혹으로 최근 사의를 표명했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부패구조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빼어난 스펙과 실력을 갖춘 청년인재들도 공공기관 합격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다.

이번에 채용비리 피해자를 구제한 것은 올바른 조치지만 더 시급한 것은 채용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공공기관에 더이상 특혜와 불법채용이 발을 못 붙이게 하려면 채용 전 과정을 완전히 공개하고 소규모 채용뿐 아니라 채용자체를 전문대행기관을 지정해 운영하는 등 절차적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공정한 사회가 되려면 우월적 위치에서 공공기관^공기업에 압력을 행사해 온 정치권부터 정신을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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