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인 7색으로 엿보는 '페미니즘 이후의 페미니즘'
7인 7색으로 엿보는 '페미니즘 이후의 페미니즘'
  • 이지효 기자
  • 승인 2018.03.18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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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립미술관 3월 기획전 '부드러운 권력'
22일 개막식서 퍼포먼스 '파종'… 5월 6일까지 전시
조영주 作, '그랜드 큐티 Grand Cuties'단채널 영상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청주시립미술관은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일곱 명의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부드러운 권력(Soft Power)'전을 지난 15일부터 공개했다.

청주시립미술관은 오는 22일 오후 4시 미술관 로비에서 참여작가들과 국내 미술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을 개최할 예정이며 오픈 행사에는 참여작가인 임은수 작가의 퍼포먼스 '파종'이 공연될 예정이다. 이번 '부드러운 권력'전은 5월 6일까지 관람 가능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이번 전시의 참여작가는 김주연, 김희라, 박영숙, 윤지선, 임은수, 정정엽, 조영주 등 일곱 명의 여성 작가들이다. 40대 초반에서 70대에 이르는 이 작가들은 우리나라 페미니즘 미술 초기부터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활동했던 작가들도 포함돼 있지만, 페미니즘의 개념 아래 한 번도 묶이지 않았던 작가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윤지선 作, 'rag face #17001-2'

이윤희 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에 따르면 1980년대에 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해 1990년대에 목소리를 뚜렷하게 내기 시작했던 여성주의 미술가들은 대체로 민중미술의 부상과 함께했으며 민중미술이 보여주었던 다양한 양상들 가운데 하나로 해석돼 왔다.

민중미술의 한 양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던 여성주의 미술은 태생적으로 성차별의 문제와 더불어 계급의 문제 등을 함께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계급에 의해, 성차별에 의해 이중적으로 억압받는 여성의 문제들에 대해 직설적인 조형언어를 사용해 저항적 메시지를 담는 작품들은 미술계와 여성계의 호응을 받았다.

임은수 作, '파종4'

그러나 1990년대 초반 이후 정치적 긴장의 완화, 그리고 문화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에 본격적인 탐색으로 인해 여성주의 미술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특히 '주체'가 다양한 문화적 주체 위치의 혼합으로 구성된다고 보는 포스트구조주의와, 백인남성의 이성주의적 주체성 개념을 비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페미니즘은 보편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용한 개념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여성주의에 관심을 둔 미술가들은 기존의 권력구조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여성들 안의 차이와 각 개별 여성의 중층적 정체성에 주목하는 작품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1980~90년대 여성주의 미술 그 이후, 최근의 여성 작가들의 미술 속에서 발견되는 한 가지 지점은 여성의 재현이라는 개념 자체를 명확히 한정지으려 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오히려 여성을 바라보는 기존의 틀을 불안정하게 하기 위한 전략을 취하며 오히려 기존의 방식으로 바라본 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가진 모순점을 열어보이기 위한 작품의 내용을 구성하기도 한다. '부드러운 권력'전은 이러한 내용을 가진 작가들을 초대해 그들의 작품이 전하는 새롭고 유쾌하고 부드러운 힘을 보여주고자 한다.

김주연(설치, 사진) 작가의 버려진 옷에 새싹이 피어나게 하는 작품들은 한 인간의 죽음과 삶,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토대가 되게 하는 여성의 육체에 대한 사유를 불러 일으킨다. 살아가기 위해 입는, 그리고 한 개인의 개성을 담은 옷의 형태는 그것을 토대로 발아하는 새싹들의 안식처가 되는데 여기서 삶과 죽음의 순환에 대한 비유들이 탄생한다.

김희라 作, '스타벅스'

김희라(섬유공예)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어수선한 집구석'의 재현에서는 작가이자 주부, 어머니로서 살아가는 삶 속에서 자투리로 주어지는 시간들의 부산물로서의 작품들이 가득하며 지나치는 일상의 순간들을 포착해 그것을 유쾌한 유머로 발화하는 재치를 볼 수 있다. 일상에서 즐겨먹는 '스타벅스'나 '배스킨라빈스 31'의 로고도 바느질로 정교하게 표현해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솜씨를 발휘했다.

박영숙 작가의 '미친년 프로젝트'는 서양의 팜므파탈(femme fatale)과도 비교될 수 있는 여성상을 보여주면서, 사회적 낙인인 '미친년' 개념이 가진 저변의 힘을 보여주는 새로운 도상을 창출했다.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여성들의 존재는 쉽게 '미친년'으로 통칭되나 박영숙의 사진 속에서 담 너머의 세계를 궁금해하고 넘겨다보며, 급기야는 울타리를 넘어서 거리를 활보하는 그녀들은 현실을 전복하는 위반적인 힘을 보여준다.

윤지선 작가의 '누더기얼굴(Rag Face)' 연작은 자신의 얼굴 사진에 미싱으로 박음질을 하고 자신의 초상을 변형시킨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에서는 한 사람의 얼굴이 이중 삼중의 변형을 거쳐 때로는 무시무시하게 때로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고정된 자아의 개념에 도전한다. 늘어진 머리카락 삐뚤어진 입, 표정에서 괴기스러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은근 빠져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임은수 作, '파종, 퍼포먼스'

임은수 작가는 퍼포먼스와 설치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 참여한다. 그의 퍼포먼스에 등장하는 곡물과 설치 작품에 사용되는 작은 빛은 감추어 드러나지 않는 여성적 힘의 상징이다. 한지위에 볼펜으로 정교하게 표현한 '파종' 시리즈는 작가의 고뇌와 손에는 잡히지 않는 무한성의 상징으로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인간세계를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힘들을 여성화해 해석하는 작품들이다.

정정엽의 작품들은 곡물이 가진 생장의 힘을 여성의 힘으로 비유했다. 팥 알갱이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은 모여서 힘을 이루는 민중적 상상력을 배가시킨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팥 알갱이가 보이지만 팥이나 콩알갱이들 하나하나가 모여 이뤄진 화면은 결과적으로 미니멀한 화면을 구성해 대단히 추상적인 미감을 보여준다. 하나하나의 알갱이를 민초로 생각해 표현한 작품들이 재미있다. 또 1985년부터 2017년까지 그녀의 작업실 변천사를 년도별로 정리해 표현한 액자도 볼거리다.

조영주 作, '꽃가라 로맨스Floral Patterned Romance'단채널 영상

조영주 작가의 영상작품들 '그랜드 큐티'와 '꽃가라 로맨스'에서 익명의 중년 여성들은 잘 짜여진 안무를 익혀 멋진 댄스를 선보인다. 출연자들이 실제 거주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해 그들이 최대한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진지하게 춤에 임하는 모습은 '아줌마'들이라고 통칭되는 존재들 각각의 삶을 상상하게 하며, 한 시대와 공간이 조건짓는 인간의 삶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윤희 학예팀장은 "이처럼 '부드러운 권력'전에서는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여성, 혹은 여성의 삶을 재현하는 다양한 양상을 볼 수 있으며, 이들의 작품을 통해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 '이후'의 변화를 조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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