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일상은 잘게 쪼개진 시간이 무한 반복되며 고만고만한 일들로 채워진다. 소소한 일상이 되풀이되며 쌓이는 존재와 사건들의 집약과 실체가 삶이다. 한 해를 시작하며 다짐했던 다부진 마음을 단단히 붙들고 있는지 들여다본다. 다부진 마음에는 기본을 지켜가며 살겠다는 약속도 담겨있다. 산다는 것은 단순히 살아남는 게 아니라 기본을 지켜가며 살려고 애쓰는 수양(修養)의 여정이다. 삶의 근간이 되는 기본을 지키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나이 들며 실감한다.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 가장 먼저 꼭 있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어릴 적 눈사람 만들 때 친구보다 빨리 만들려는 마음만 앞서 눈덩이를 대충 주물러 만들어 굴리다보면 오래 못가 눈덩이가 반으로 쩍 갈라지는 낭패를 경험한 적이 있다. 벽돌 하나만 놓고 볼 때는 미약해보이지만 건축물이 완성되었을 때 벽돌 하나가 비틀어지거나 떨어져 나가면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허물어진다. 건축물을 올릴 때도 기초공사가 중요하듯 기본은 삶의 근간이며 중심축이고 기본만큼 강한 힘은 없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인생의 아침 프로그램에 따라 인생의 오후를 살 수는 없다. 아침에는 위대했던 것들이 오후에는 보잘 것 없어지고, 아침에 진리였던 것이 오후에는 거짓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지만 인생의 아침과 오후에 모두 적용되는 삶의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기본이다. 사는데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낸 자리에 기본으로 채우는 만큼 허물은 줄고 행복한 삶은 움튼다.

김형경 작가는 "삶에는 현실 원칙과 쾌락 원칙이 있습니다. 아직 주도적으로 현실의 삶을 살지 않는 아기는 즐거운 일, 만족스러운 일, 쾌락을 주는 일만 좇아도 됩니다. 그러나 초등학생만 되어도 하기 싫은 일, 불편한 일, 고통스러운 일을 해내야 합니다. 그것을 현실 원칙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현실 원칙에 속하는 85퍼센트 일거리와, 쾌락 원칙에 속하는 15퍼센트의 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즉각적인 욕구 충족을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 고통스럽더라도 현실적 삶을 돌보는 능력 등은 반드시 배워야 하는 소중한 삶의 기능입니다."고 말한다. 소중한 삶의 기능은 기본을 지키는 삶으로 완성된다.

정신의 나태함이 기본을 무너뜨리고 삶의 근간을 해친다. 기본이 튼튼하지 못하면 봄 싹이 움트듯 인생에 허물이 파고든다. 기강이 무너진 조직에서 성장 동력을 찾기 어렵듯 기본이 무너진 인생에서 성공과 행복을 맛보기는 요원하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에는 선인들이 경험으로 체화시켜 축적한 본성과 인성, 기본과 근간의 가치가 담긴 지혜다. 삶과 일에 기본을 뺀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은 허상이고 기본이 무시되는 일상은 인생의 근간을 뒤흔든다. 기본은 삶의 버거움을 견디고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기본을 지킨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엄격성을 적용한다는 의미다. 살아오면서 쌓은 연륜과 지식들로 원숙함에 이르지 못한 채 나이를 먹는 것은 재앙이다. 법정 스님은 "얼마만큼 많이 알고 있느냐는 것은 대단한 일이 못된다. 아는 것을 어떻게 살리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지 보다 행위 하나하나에 깃든 본질과 정성의 무게에 달려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외연을 확장하기보다는 기본을 지켜가며 사는 일의 가치를 절실히 느낀다. 기본은 삶의 정수(精髓)이고 본질이며 인생의 근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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