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고은 시인 / 뉴시스

고은이 정식으로 문단에 이름을 올린 건 1958년 11월의 일이다. 서정주가 '현대문학'에 '봄밤의 말씀'을 추천하여 시인이 된 것이다. 서정주의 추천은 파격적이었다. 당시 '현대문학'은 시의 경우 3회 추천완료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정주는 단 1회로 추천으로 고은을 시단에 내보냈다. 앞서 '현대시'에 조지훈의 추천을 받아 '폐결핵'을 발표한 사실이 고려되었을 테지만, 주간이던 조연현은 마뜩지 않았던 듯, '편집후기'에서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적었다. 이후 고은은 '현대문학'에 '요오 요오''봄비', '눈물'등의 시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져간다. 흔히 서정주와 고은을 사제관계라 부르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그런 고은이 2001년 여름 '창작과비평'에 '미당담론'이란 글을 실어 서정주와 그의 문학을 부정했다. 서정주가 세상을 뜬 뒤 여섯 달쯤 지난 뒤의 일이었다. 문단에 시시비비가 뜨거웠다. 주로 진보적 성향의 문인들 사이에 갈채가 있었지만, 비난하고 질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고은의 서정주 비판은 이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고은이 '자유실천문인협의회'조직을 주도하고 대표 간사가 된 뒤 적극적인 반독재 정치운동에 나설 무렵, 서정주는 이미 그의 스승이 아니었다. 1983년에 있었던 어느 문인 모임에서 서정주가 고은에게 "왜 안 오시는가, 꼭 와, 오란 말이여"하며 서운해 하자 고은은 "선생님 세상 떠나시면 오겠습니다"하며 매몰차게 외면했다는 말도 떠돌고, 그날 이후 고은은 정말 서정주가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찾은 일이 없다는 말이 전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고은은 그의 글 곳곳에서 서정주에 대한 배타적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가 이토록 서정주를 질시하고 폄하해 온 까닭은 서정주의 친일 이력에 대한 실망과 경멸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전기를 쓰고, 전두환 대통령에게 송시를 바친 것과 같은 권력 추수적인 행적도 마땅치 않았다. 일제 잔재 청산이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고, 민주화가 절실한 명제이자 시대정신이던 때 서정주의 이같은 행적은 충분히 대중적 공분을 살 만한 허물일 수 있었다. 그래서 스승 앞에도 망설임 없는 고은의 일갈과 채찍은 사뭇 용기 있는 지성과 양심의 발현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고은이 지금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수렁 속에 빠져들고 있다. 성폭력 추문에 휘말린 때문이다. 2017년 말 '황해문화'에 발표된 최영미 시인의 '괴물'이란 작품을 통해 처음 불거진 이후 온갖 괴이쩍고 민망스런 추문들이 잇달아 드러나면서 해마다 노벨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던 85세 노 시인의 명예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모시고 섬기기에 경쟁적이던 지방자치단체나 기관들이 이젠 고은 흔적 지우기에 바쁘다. 15년 가까이 살아온 수원의 집에서는 떠나야 할 형편이 되고, 서울 도서관에서는 시인을 기려 조성한 '만인의 방'이 철거되었다. 출판사들은 교과서에 실린 시인의 작품을 빼거나 아예 출판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이며, 그가 앞장서 조직을 주도하고 이끌어온 '한국작가회의'에서는 징계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스스로 탈퇴했다.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는 심정은 그저 허전하고 착잡할 뿐이다. 그 허전함은 또 하나의 우상이 파괴된 데 따른 상실감에서 비롯된 것이며, 착잡함이란 여전히 우상에 매이고 이끌려 살고 있는 우리들 지성과 양식의 허약성에 대한 실망감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알려질 만큼 알려져 알 만큼 알고 있던 시인의 일탈적 기행과 추행을 그저 술자리의 안주 삼아 함께 웃으며 떠들어 온 일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지 않다. 서정주의 친일을 비판하던 고은의 수모를 보면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조심해야 할 일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세간의 비판을 받아온 서정주의 일련의 행적은 일면 역사의식의 허약성에서 비롯된 과오일시 분명하며, 그의 이름 석 자를 뇌리에서 지울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비극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허물을 드러내고 비판하는 데는 도덕적 자기 엄정성이 결여되거나 그가 살아온 시대에 대한 통찰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시대를 이끌어 온 역사 속 인물들을 끌어내어 친일파 독재자 적폐 세력, 줄줄이 가슴에 주홍글씨를 매달고 있는 작금의 세태가 걱정스럽다. 세상은 남의 허물을 들춰내어 비판하고 정죄하는 데 용감한 사람들에 의해 바뀌지 않는다. 다만,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데 용감한 사람들을 양산할 뿐이다. 세상을 바꾸고 나라를 개조하겠다며 나서다가 줄줄이 말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이 그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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