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에세이스트

이어령(왼쪽) 초대 문화부장관과 변광섭씨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생명이 자본이다, 지의 최전선, 디지로그, 젊음의 탄생,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의 책을 읽으면서 가슴 뛰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88올림픽 개폐막식, 새천년준비위원회 프로젝트, 난지도의 화려한 변신 앞에서 감동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AI를 전쟁에 사용하면 재앙이 올 것이고 문화에 활용하면 삶이 풍요로울 것이라며 평창올림픽을 드론과 미디어와 증강현실 등 4차산업으로 무장할 것을 제안한 그의 창조정신과 통찰력에 메스를 가할 자 누구인가.

중국의 대륙문화, 일본의 해양문화 사이에서 한국은 언제나 작고 초라하다. 그렇지만 당신께서는 한국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아시아의 정신이라며 통섭과 융합, 지혜와 창조의 가치로 글로벌 리더가 되자고 웅변한다. 한중일 공통한자 808자를 만들고 동양의 문화원형을 특화하며 갈등과 대립의 이 땅을 화해와 평화로, 문화와 예술로 풍요롭게 가꾸기 위해 오늘도 피를 토한다.

3고초려(三顧草廬). 촉한의 유비가 제갈량을 자기 인재로 쓰기 위해 그 집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나는 이어령 선생님을 동아시아문화도시의 조직위원장으로 모시기 위해 오고초려(五顧草廬)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청주시의 동아시아문화도시 사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했고, '생명문화도시 청주'에 스토리텔링을 만들었으며, 세계 최초로 젓가락페스티벌을 개최해 나라 안팎의 높은 관심을 얻었다.

봄이 오는 길목, 서울 평창동에서 이어령 선생님을 만났다. 벌써 4년째 당신과 함께하고 있으니 그 만남은 언제나 기쁨이고 설렘이다. 당신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통찰력과 새로운 미래에 대한 의지를 만날 때마다 가슴이 뛴다. 나는 그 뜻을 일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부끄러움에 시리고 아프다. 언제나 현명해 질 수 있을지, 당신의 뜻이 온 세상에 등불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할수록 아득하고 험난하다.

당신께서는 길을 다니는 행인이 되지 말고 길을 만들고 닦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일침했다. 검색하지 말고 사색하라. 그 속에 지혜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봄이 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았다. 눈 속의 매화를 찾아 나서지 않았던가. 배고파도 구걸하지 않고, 불의를 보면 두 손 불끈 쥐며 반듯한 길을 가고자 하지 않았던가. 인간의 존재 자체가 갈등이니 두려워 말라. 부부처럼 서로 따로, 생명은 궁극적으로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함께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말씀하셨다. 벌랏마을 이종국 작가가 개발한 녹조문화상품을 보면서 사람과 자연의 부산물이 녹조라며 세계 최초의 녹조 집을 짓고 그 속에 다양한 문화적 콘텐츠로 특화하자고 했다. 신비의 피리 만파식적을 AI로 만들어 세상에 기쁨과 희망이 되게 하자고 했다. 도법자연(道法自然).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니 청주에 세계 최고의 자연학교, 저절로학교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독일에는 숲속의 학교가 1,300개나 있고 플라톤 아카데미는 도네이션을 통해 세계적인 지식인 양성학교가 되었다. 청주는 교육도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전쟁과 갈등과 대립의 시대에는 진정한 아시아적 정신이 필요하다. 한중일 유교 르네상스를 만들자.

변광섭 에세이스트

점과 점이 만나 선이 되고, 선과 선이 만나 공간을 만든다. 하여, 청주의 가로수길과 수많은 보호수를 품고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인간띠를 만들자. 한글은 기호체계가 곧 우주다. 천지인(天地人)을 품고 있는 세계 유일의 생성문자다. 세종대왕이 초정에 행궁을 짓고 요양하며 조선의 르네상스를 펼쳤으니 그곳은 우주를 품은 곳이다. 세종대왕 리더십 아카데미를 만들고 한글을 활용한 다양한 디자인과 창조 콘텐츠를 개발하자고 했다. 역사를 되돌아볼 때 국민을 착취한 사회는 쇠퇴했고, 구성원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한 국가는 풍요로웠다.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곳에는 희망이 없다. 위기의 시대, 이어령 선생님의 메시지가 나태해진 내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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