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진단] 한기현 국장겸 진천·증평주재

홍성열 충북 증평군수가 14일 군청 소회의실에서 지방선거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7.03.14. / 뉴시스

우리나라에서 대선, 총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꼭 회자되는 화두가 있다. 바로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정치인이 평소 소신이나 철학,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내뱉은 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짊어지겠다"며 약속이라도 한듯이 외국으로 떠나거나 시골로 내려간다. 그리고 국민들이 잊을만 하면 다시 돌아와 '정치는 생물'이라며 유권자들에게 내건 불출마 약속을 번복하고 밥을 먹듯이 다시 선거에 출마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국민들도 '정치는 생물’이라는 정치인들의 달콤한 말에 현혹돼 옛 일은 다 잊어버리고 다시 표를 던지는 악습이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계의 영원한 격언인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은 처음 쓴 정치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고 한다. 사실 고증이 안됐지만 김 전 대통령도 정치 선배 또는 정치 관련 기사, 서적 등을 인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이 말은 민주주의가 도입된 지 7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치인은 물론 신문과 방송 등 언론에서 선거철만 되면 자주 인용되는 정치 격언으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정치가 생물'이라는 말은 넓게는 정치적인 관계가 불변이 아니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국제사회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말처럼 국내 정치에서도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서로 협력 관계를 유지한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87년 대선에 이어 1989년 3당 합당 이후 서로 적이 됐다. 1961년 5·16 쿠데타 주역인 김종필 전 총리도 김대중 정권의 집권을 도왔다. 최근에는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민주당과 민주당에서 탈당해 새로 창당한 열린우리당이 한솥밥을 먹든 동지 관계에서 서로 철천지 원수가 됐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화두는 중앙정치 뿐만 아니라 지방 정치에서도 널리 애용되고 있다. 실례로 홍성열 증평군수는 지난 14일 2014년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 다음 선거 불출마 약속을 번복하고 3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홍 군수는 이날 출마 기자회견에서 "지난 8년간 늘 긴장 속에서 오직 증평군 발전과 군민의 행복을 위해 달려왔기에 더 이상 후회도 명예에 대한 욕심도 없으며, 훌륭한 지도자에게 군수 직을 넘겨주고 제2의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일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6.13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중단없는 지역 발전을 걱정하는 많은 분들이 출마를 적극 권유해 훌륭한 품성, 완성된 인격을 갖추지 못한 후보로 존경받지 못하더라도 지역 발전을 염원하는 다수 군민의 뜻을 받드는 것이 공인으로서 공익을 위한 도리라고 생각해 3선 도전을 결심했다"고 출마 배경을 밝혔다.

한기현 국장겸 진천·증평주재

홍 군수가 3선 도전을 선언하자 군수 출마 예정자들을 중심으로 3선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군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지역 사회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군수 선거 출마 예정자들은 "홍 군수가 3선 도전을 결심하게 된 주변의 적극적인 출마 권유는 군민들을 무시한 행위로 아무런 명분도 없으며, 단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며 군민 심판론을 주장했다. 한 출마 예정자는 "군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군수는 선거 출마 자격이 없다"며 "즉각 사퇴하지 않을 경우 유권자들이 표로 심판할 것"이라고 밝혔다. 1991년 반쪽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30년 가까이 되면서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을 바로보는 의식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 정치인들의 궁색한 변명에 불과한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화두가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여전히 먹힐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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