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나와 동부구치소로 향하며 측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18.03.23. / 뉴시스

외진 산속에 땅거미가 진다. 어둠이 깔린 저녁. 타종 3번과 함께 밖에서 방문을 걸어 잠근다. 오늘도 1.5평의 좁고 밀폐된 공간엔 수인번호를 단 푸른색 죄수복을 입은 나 밖에는 아무도 없다. 독방엔 깊은 적막이 흐른다. 외부와의 유일한 통로는 방문 밑 식판이 들어오는 배식구뿐. 이제부터는 나를 성찰하는 긴 여행이 시작된다. 교도소가 아니다. '내 안의 감옥'이다. 죄를 지어서 갇힌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독방으로 걸어들어 간 것이다. 나와 세상을 격리해 세파에 찌든 영혼과 욕망을 정화시키기 위해서다. 강원도 홍천의 '(사) 행복공장'내 감옥 수련 시설 이야기다.

누구는 일부러 찾아가지만 누구는 끌려간다. 누구는 독방에서 삶의 활력을 이끌어내지만 누구는 정신이 황폐해진다. 독방에서 환상과 환청을 느끼고 한없이 나약함을 느낀다면 죗값을 치르거나 아니면 진짜 억울한 죄수다. 교도소 독방은 6.56㎡(1.9평)의 크기에 접이식 침대와 TV 작은 책상만 있는 황량한 공간에 겨울엔 창문에 고드름이 맺힐 만큼 춥다고 한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하지만 더 힘든 것은 절대 고립감이다. "가장 무서운 건 폐소공포증이다". 최근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정봉주 전 의원은 독방의 추억에 진저리를 쳤다. 그는 모 케이블방송에 출연해 "1.9평짜리 (독방에) 들어가면 '헉'하면서 심장을 친 다"며 "저는 징역을 잘 산 사람인데도 그 불안감이 5개월은 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엄정 독거'시설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엄정 독거는 TV와 신문 구독도 막고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되며 노역의 기회도 없다. 그래서 구금성 질환인 변비로 고생하고 천정이 무너져오고 벽이 좁혀오는 느낌에 숨이 막힌다고 한다. 그래서 2년 이상 수용하면 정신이상, 반사회적 성향을 보인다. 2008년 레이디경향 8월 호엔 '희대의 탈옥수'인 신창원의 수형생활이 실렸다. 강도치사죄로 무기형을 선고받은 흉악범도 2년간의 엄정 독거생활에 공포를 느꼈다. 신창원은 면회 온 변호사를 껴안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하루 종일 시멘트벽만 보다가 하루가 가고 .. 동물 같은 생활 이젠 정말 삶의 한계를 느낍니다"라고 고통을 호소했다. 눈언저리가 움푹 들어가고 볼살이 빠진 신창원의 얼굴에선 한없이 불쌍한 표정이 드러났다고 한다. 대도(大盜) 조세형 역시 독방은 무서운 곳이었다. 감방 아래에서 슬프게 우는소리가 매일 들려 잠을 설쳤다. 저항시인 김지하도 수감생활하면서 감옥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명박(MB)·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방은 그나마 안락한 편이다. 3.95평(13.07㎡)에 TV, 거울 접이식 매트리스, 식탁 겸 책상, 사물함, 싱크대를 이용할 수 있으며 하루 45분 정도 산책 등 가벼운 운동은 물론 매일 외부인 면회도 가능하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변호사 외엔 동생들 면회도 거절할 만큼 지독한 은둔형으로 주로 독서로 시간을 보낸다고 하는데 MB는 어떻게 적응할지 궁금하다. 홍천 '내 안의 감옥'은 휴대전화는 물론 책도 반입금지다. 보이는 것은 벽과 자신의 내면밖에 없다. 그런데도 마음은 자유롭다고 한다. 그래서 '셀프 감옥'에서 귀한 휴가를 보내며 재충전하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 나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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