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2018 무술년 새해 첫 날인 1일 오전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 탐방객들이 새해 첫 일출을 맞이하고 있다. 2018.01.01. / 뉴시스

2018년 3월 1일 새벽같이 눈을 떳다. 오랜 친구와 둘이 등산을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목표는 속리산. 일찍 일어나 봄산에 어울리게 가벼운 채비를 하였다. 평소 길을 걸을 때 바닥에 맨홀뚜껑이 잘 있는지도 확인하여야 한다는 과한 걱정의 화신인 어머니께서 필자의 가벼운 옷차림에 걱정을 늘어놓으신다. 어머니께서 방에서 무언가 주렁주렁 꺼내오신다. 설산용 아이젠과 두툼한 등산복, 그리고 등산스틱까지 등장한다. 친구와 봄산을 트래킹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나서는 것치고는 과분한 장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주시는 대로 모두 챙겨 집을 나섰다. 친구는 가벼운 운동화에 집근처 뒷산 오르는 복장으로 나를 맞이한다. 평소 준비성 없는 필자답지 않게 산행준비를 무겁게 하고 온 모습에 코웃음을 친다. 부지런히 차를 몰아 법주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다행히도 맑고 온화한 전형적인 초봄 날씨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볍다. 정색하는 등산복 차림의 필자는 살짝 부끄러움을 느낀다. 산행에 앞서 안내도를 확인해 보고 더 높은 곳을 오르기로 의기투합하여 천왕봉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친구와는 재작년 함께 겨울 한라산을 올랐었다. 친구는 산돼지처럼 힘차게 산을 타던 필자의 체력에 경의를 보냈었는데, 지금은 체력이 역전되어 친구의 발걸음이 훨씬 가볍다. 친구는 건강문제로 입원을 하여 큰 위험을 넘긴 이후 산을 자주 타면서 건강을 관리하였다. 친구의 건강회복에 안도하면서 필자도 평소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천왕봉과 문장대로 갈리는 지점까지 등산길이 완만하여 어렵지 않다. 얼음이 녹아 흐르는 개울소리가 아이들 웃음처럼 재잘거린다. 사랑하는 가족, 국가와 우리의 미래 등 제법 어른스런 대화를 나누며 산보하듯 걷는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손꼽힌다는 명산을 오르는 지라 등에 살짝 땀이 맺힌다. 간혹 봄을 시샘하는 한줄기 찬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초봄 산행이 주는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서서히 길이 좁아지며 제법 등산로 같은 길이 등장한다.

하산하는 사람들과 스치며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그분들은 필자 일행의 행색을 살피더니 그냥 돌아가라 한다. 중간부터는 눈이 무릎까지 쌓인 곳이 많아 더 이상 못 올라갈 것이라는 충고이다. 운동화를 신고 올라온 친구에게 어머니가 준비해주신 설산용 아이젠을 주고 올라갈 수 있을 때까지만 가기로 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과연 정상을 2킬로미터 가량 남긴 중턱에 이르자 온 세상이 겨울왕국이다. 하얀 눈이 나무를 모두 덮고 있다. 이제까지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중 하나이다.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도 설산의 풍경에 취해 계속 오른다. 미끄러지고 넘어지기를 수십회 반복하는 사이 이미 천왕봉 정상이다. 하얗게 눈덮힌 겨울산 정상에서 저아래 봄의 땅을 내려다보니 신선이 된 기분이다. 하산하는 길은 오르는 것보다 험하다. 돌아가라는 충고가 그제야 이해된다. 하지만, 역시 처음 접하는 겨울산의 풍광은 땀을 닦을 틈도 아까울 만큼 경이롭다. 하산하여 허름한 주막에서 막역한 친구와 함께 나누는 막걸리 한잔. 행복은 이런 것인가 싶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미친 듯이 정상에 오르는 것에 집착했던 어린시절의 등산은 매우 고달팠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간이 흘러 근력이 당시에 미치지 못하지만, 정상에 이르는 과정에서 주변을 둘러보고 동행을 배려하며 함께한 산행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르며 내리는 과정도 모두 각기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목표에 다다르는 것에만 집중하기보다, 목표에 이르는 과정을 즐기면서 그 과정을 감사해하며 꾸준히 한 방향으로 나아가면 오히려 행복감을 느끼며 성취를 할 수 있고, 잠시 처지는 순간이나 하락하는 인생길에서도 배움을 얻을 듯하다. 그리고 역시 어머님의 걱정은 아직 어린(?)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영양제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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