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 이야기] 민인숙 청주 옥산초등학교 수석교사

/ 클립아트코리아

학교의 3월은 언제나 바쁘게 돌아간다. 학년 초 업무처리로 인한 수업결손을 줄이기 위해 준비기간을 정하여 새 학기를 준비했다. 교사들의 발령도 앞당겨 이루어지고 새로운 발령지로 출근하여 담임배정, 교육과정 재구성, 교실 환경 정비 등을 미리 했음에도 말이다. 기대와 설렘으로 새로 맞은 학생들을 좀 더 깊이 알아가기 위한 학생상담과 학부모상담은 3월에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 중의 하나다. 내겐 이맘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추억 두 개가 있다.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는 즐거운 추억과 30년이 지난 지금도 부끄럽게 하는 추억이다.

추억 하나.

초임시절 경북 영양군에 위치한 시골학교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학기 초 한 주간을 '가정방문의 날'로 정하여 방과 후 학생들의 집을 방문하며 상담을 했다. 햇병아리 초임교사는 부모님들을 만나야하는 부담감을 듬뿍 안고 시골길을 참 많이도 걸었다. 때론 논두렁밭두렁을 걸어 일터에서 만나기도 했다. 비록 곱게 차려입은 옷이 땀에 젖고 신발은 흙투성이가 되기도 했지만 손을 덥석 잡으며 반갑게 맞아주시던 흙 묻은 손의 정겨움은 잊을 수가 없다.

어느 날 학교에서 가장 먼 곳에 사는 아이의 집을 찾아가느라 길을 걷고 있는데 지나가던 마차가 내 앞에 섰다. 놀라서 길을 비켜서는 내게 행선지를 물어보더니 막무가내로 마차에 타란다. 그 동네 사는 사람으로 걸어서는 한참을 더 가야하니 타고 가라는 것이다. 시골 인정이 풀풀 느껴졌다. 부끄러웠지만 마차에 올랐고 아저씨는 아이에 대한 정보도 덤으로 들려주었다. 이튿날 그 아이의 일기 제목은 '달구지 타고 오신 선생님'이었다. 내 가슴에 예쁘게 자리한 추억의 한 장이다.

추억 둘.

교직 생활 3년차, 5학년을 담임할 때의 일이다. 무단결석을 했기에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장날이라 장에 갔다 왔어요."한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학생이 학교를 와야지 장 구경을 가면 어떡하느냐"고 했더니 키 작은 그 여자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선생님 쟤네 엄마가 앞을 못 보셔서 장날마다 엄마 손잡고 장에 가요." 그 이유를 아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럼 진작 말을 하지~" 궁색한 변명을 했지만 경솔했던 내 행동이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해서 쥐구멍이라도 있었으면 싶었다. 그 아이는 장날이 되면 종종 결석을 했다. 이 사건은 이후 나의 교직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준 부끄럽지만 약이 되어준 추억이다.

상담은 이래서 정말 필요하다. 아이들의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어떤 실수를 하게 될지 알 수 없다. 토끼며 소를 건사하느라 숙제를 잘 못해오던 아이, 비만 오면 자주 지각을 하게 된다는 아이… 상담을 통해 알게 해 준 매우 중요한 정보들이다.

민인숙 청주 옥산초등학교 수석교사

초임교사 시절의 '가정방문의 날'이나 요즘의 '학부모 상담주간'이나 그 목적이나 맥락은 같을 것이다. 상담은 교육의 대상인 ‘아이’를 중심에 두고 학부모와 교사가 한 팀이 되어 더 나은 '배움과 성장'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아주 귀한 일이다. 가끔 상담을 하다보면 긴장을 하고,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거리감이 느껴지며 상담이 겉돌 때가 있다. 그럴 땐 내가 신뢰감을 주지 못하고 있나? 자책과 함께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또 어떤 땐 함께 손잡고 울며 아픔을 나눴던 상담도 있었다. 상담을 통해 학부모와 교사의 생각을 나누고 아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함으로 한 뼘 더 가까워진다면 참 좋겠다. 학부모는 교사에 대한 깊은 신뢰를 보여주고, 교사는 온몸과 마음으로 보내는 내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 해달라는 학부모의 메시지를 충분히 공감하고 조금씩만 노력한다면 그 사이에서 자라는 우리의 아이는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사랑이 철철 넘치는 눈빛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놈이 잘못하면 팡팡 패 주세요." 하던 학부모의 부탁을 충실히 들어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내 아이를 사랑으로 잘 가르쳐 달라는 역설적인 표현임을 너무나 잘 알기에….

요즘 상담하느라 퇴근시간도 늦어지는 후배교사들에게 조심스럽게 당부한다.

학부모님과 한 뼘 더 가까워지는 상담! 우리는 한 팀!임을 서로가 느끼게 되는 의미 있는 상담이 되도록 노력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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