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 pixabay

간 밤 눈이 내렸다. 봄이 왔건만 봄이 아니다. 절기상으로 춘분인데 먼 산은 춘설로 온통 흰빛이다. 꽃망울 터트렸을 봄꽃들이 걱정된다. 사계절이 있지만 봄은 어느 계절보다 사무치게 그립고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할 만큼 반갑다. 모질게 추운 겨울의 끝자락에서 오는 계절이라 그럴 것이다. 국어국문학과 스터디에서 봄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꽃에 조예가 있는 학우가 봄마다 회자되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왕소군(王昭君)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소군원>에서 '춘래불사춘'이 유래했단다. 오랑캐 땅에는 화초 없으니/ 봄이 와도 봄은 아니리// 저절로 허리띠 느슨해지는 것은 /허리 날씬하게 하려던 것 아니라네/

동방규가 시에서 오랑캐 땅이라고 지칭한 곳은 흉노의 땅이다. 서시, 조선, 양귀비와 더불어 중국의 4대 미인 중의 한 사람인 왕소군은 중국 전한 원제의 궁녀였다. 한나라는 술과 비단, 쌀 같은 공물은 물론 왕실의 공주를 흉노의 군주에게 배우자로 보냈다. 11대 황제였던 원제는 공주 대신 궁녀를 공주로 속여서 보내기로 한다. 원제에게는 궁녀가 너무 많아 화공을 시켜 궁녀들의 얼굴을 그리게 한 다음, 화첩에서 마음에 드는 여인을 선택했다. 이에 모든 궁녀들은 그림을 잘 그려 달라고 뇌물을 썼으나 왕소군만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절세의 미인이었지만 왕의 부름을 한 번도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흉노에게는 가장 못생긴 왕소군을 공주라 속여 보냈는데 원제가 출가하는 왕소군을 보니 천하절색이었으므로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억울하게 고향을 떠난 왕소군의 삶은 아무리 외로워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저절로 허리띠가 느슨해질 만큼 야위어갔으니 봄이 와도 결코 봄이 아니었으리라. 고등학교 선생인 학우는 아이들에게 봄에 대해 물어보면 도전, 설렘보다는 압박, 스트레스란 단어를 이야기한단다. 대학 입시라는 거대한 벽이 아이들을 날마다 월요일 같은 삶을 살게 하니 무슨 여유가 있으랴.

간호조무사로 25년여를 근무했던 학우가 올해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시간의 벽을 거슬러 다시 젊음으로 돌아간 느낌이란다. 하지만 어린 학우들을 보면 안쓰럽단다. 김밥이나 컵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며 대학 1학년 때부터 오로지 취업을 위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청춘이 안타깝단다. 서울서 통학하는 학생은 수업시간에 늘 엎드려 잔단다. 대학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음악 활동하는 것을 허락받았다고 한다. 늘 엎드려 자던 학우가 학교 가요제에서 음악이 나오니까 온전한 몰입으로 신나게 랩을 하더란다.

만약 왕소군이 화공에게 뇌물을 주었더라면 따스한 봄이 왔을까? 또 학생들이 학업이나 취업에 대한 압박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인생의 봄을 즐기지 않을까? 대학 대신 랩을 하는 것을 부모가 허락했다면 누군가는 치열하게 사는 낮의 삶을 허투루 버리고, 밤에만 온전한 내가 되어 랩을 즐기지는 않으리라.

모임득 수필가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벽에 둘러 쌓여있다. 세상을 살기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직은 살기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할지는 내 행동에 달려있다. 어느 삶이건 목표를 위해들인 시간과 노력이 있다. 시간의 벽을 넘어 새내기가 된 학우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춘설은 내렸지만 분명 봄은 오고 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