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제천 노블 휘트니스 스파 화재 참사 당시 현장 / 중부매일 DB

오늘이 충북 제천에서 초대형 화재참사가 발생한지 꼭 100일이 됐다. 대낮에 시내 스포츠센터 주차장에서 시작된 화재는 삽시간에 8층 건물 전체를 덮쳐 29명의 소중한 생명이 운명(運命)을 달리했다. 화재 현장은 아비규환(阿鼻叫喚)에 다름없었고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오열(嗚咽) 했으며 전 국민은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봐야 했다. 제천 화재참사는 고질적인 병폐와 불법, 미흡한 안전의식등이 만연된 우리사회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개선된 것은 별로 없다. 제천 화재참사 이후 한 달 여 만에 발생한 밀양 세종요양병원 화재에선 무려 50명이 생명을 잃었다. 제천 화재이후 100일이 지났고 그 사이에 수많은 대책이 쏟아졌지만 두 번 다시 대형 참사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 일은 아니다. 국민모두가 자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형 참사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그래서 경각심을 갖고 대비태세를 갖지 않으면 인명피해가 커진다. 지난 2014년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세월호참사가 대표적이다. 목숨이 촌각(寸刻)을 다투는 시간에 정부의 안전시스템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얼마나 큰 비극이 발생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건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가 개조'롤 통해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바꾸겠다"라고 선언하고 안전행정부의 안전관리 기능과 소방방재청의 방재기능으로 '안전정책실'과 '재난관리실을' 신설했다. 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30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할 수 있는 재난대응 체계를 갖추기 위해 육상과 해상 등의 현장대응 기능을 보강했다. 하지만 안전에 대한 구호를 외치고 정부조직을 바꾼다고 재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지도자의 정신자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리 조직체계를 바꾼다고 해도 안전한 국가 될 수는 없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을 보면 안타까울 정도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잇따라 발생한 인천 웅진군 영흥도 낚시배 충돌사고와 제천과 밀양의 대형화재는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대비 시스템이 국가적 어젠다로 떠올랐으나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사 원인은 늘 판박이다.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늑장대처, 증축과정에서 불법난무, 다중이용시설에 맞지 않는 공법,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해 안전관리 투자를 게을리 한 사업주, 지자체와 소방당국의 허술한 안전 점검등 열거하기도 벅찬 문제점들이 관행처럼 박혀있다. 더 큰 문제는 불합리한 안전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위해 후속조치에 나서고 미흡한 법령을 재정비해야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빠른 속도로 잊혀 진다는 점이다.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 이른바 하인리히 법칙이다. 사소한 징후만 잘 포착해 개선해도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 소방당국이 메뉴얼대로 일사분란하게 대처해야겠지만 국민과 기업의 안전의식도 변해야 한다. 평소 법규와 질서를 제대로 지키는 것이 대형 참사를 막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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