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진단] 김금란 부국장 겸 교육부장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한 2018년 성차별, 성폭력의 시대를 끝내기 위한 2018분 말하기 대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미투 대자보 게시판을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23일 오후 7시께까지 이어말하기를 이어나갈 예정이며 이어말하기 종료후엔 문화제가 진행될 예정이다. 2018.03.22. / 뉴시스

최근 서울에서 열린 패션쇼에서 미투 메시지를 담은 의상이 선보였다. 해시태그를 붙인 '미투(ME TOO)', '위드유(WITH YOO)'를 비롯해 말하다(Speak), 신뢰(Trust), 존엄(Dignity) 등의 글씨가 적힌 셔츠를 입은 모델이 등장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성추문 문제가 패션계 트렌드로 자리 잡는 지경에 이르렀다. 학내에서 성폭력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예방교육, 실태조사, 신고센터 운영 등 대책이 쏟아진다. 하지만 학생들이 꼭 받아야할 의무 성교육 시간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데 효과가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청주시내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대학에 진학한 한 학생은 고교시절 체계적으로 성교육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고 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성교육은 중간·기말고사가 끝나면 학생들의 머리를 식히기 위한 쉬는 시간 정도로 생각된다. 3학년 때는 수능 끝나고 강당에서 3학년 전체 학생이 참가한 가운데 외부강사로부터 PPT를 활용한 성교육을 받은 것이 전부다. 최근 제자 성추행 파문에 휩싸인 청주 한 여고를 졸업하고 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학교보건교사와 외부강사로부터 성교육을 간간히 받았지만 영상을 틀어주는 정도로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다.

충북을 비롯한 전국의 초·중·고 학생은 1년에 15시간 이상의 성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하지만 도내 고등학교에서 15시간의 의무 성교육 지침을 따르는 곳은 없다. 대부분의 학교는 이 시간을 수능 대비 자습시간으로 대체하고 있다. 성교육으로 활용할 수 있는 창의적 체험활동시간 등은 대학입시라는 압박감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자습시간으로 쓰이고 있다. 심지어 학교 측에서 노골적으로 '수능 자습'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현장에서는 초·중·고 학년 별로 연간 15시간 이상 의무 성교육 지침이 비현실적이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청주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입시위주의 교육과정에서 성교육 시간을 따로 마련해 진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미투 운동이 사회전반으로 확산되면서 교육부가 제시한 '국가 수준의 성교육 표준안'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성교육 표준안'은 성교육을 위한 교과서가 없고, 교육현장에서 성교육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일자 연령대별로 체계적이고 실효성 있는 성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개발한 교육부의 '성교육 가이드라인'이다. 현재 초·중·고교의 성교육 담당 교사들은 이 표준안을 기반으로 한 지도서 등을 활용해 수업을 하게 돼 있다.

김금란 부국장 겸 교육부장

2015년 성교육 표준안 처음 공개 당시 '여자는 무드에,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 '성폭력을 예방하려면 단둘이 여행을 가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뭇매를 맞자, 교육부는 최근 수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표준안 역시 성 고정관념과 그릇된 예방법 일러주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성폭력 예방이 '피해자의 확실한 거절'에만 초점을 맞춰져 '성폭력은 피해자가 여지를 주기 때문에 발생 한다'는 피해자 유발론적 인식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충북도교육청을 비롯한 교육당국이 현장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당국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격의 대책만 쏟아내지 말고 현장을 면밀히 살피길 바란다. 고교시절 교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 한 피해자는 "2차 지옥은 구원의 손길을 뻗었을 때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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