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권 독점·과세자율 제한까지...지방분권과 거리 멀어
지방정부 입법 주체 안돼 국민발안권도 ‘작동불능’

이기우 인하대학교 교수가 23일 오후 제주도청 4층 대강당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 지방분권 개헌으로 시작됩니다'라는 주제로 열린 2018년 제1차 권역별 지방분권 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2018.02.23. / 뉴시스

[중부매일 김성호 기자] 지방정부는 자치입법권을 가지고 있지만 법령의 범위 내에서만 인정된다.

즉, 지방자치단체가 처리하는 위임사무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자치사무에 대해서도 법령으로 상세한 지침을 정하고 있기 때문에 지방정부에게 독자적인 지방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는 것이다.

법령이 지역실정에 맞지 않고, 지방에서 더 좋은 문제해결방안을 가지고 있어도 지방에서는 법령에서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 셈이다.

이에 본보는 이기우 지방분권국민회의 공동대표(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정리한 자료를 토대로 이번 대통령 개헌안의 문제점을 상세히 재조명해 본다. / 편집자

 

입법권의 국회독점 고착화

이기우 지방분권국민회의 공동대표 / 중부매일 DB

현행 헌법제 40조에서는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개헌안 43조도 '입법권은 국회에 있다'고 규정, 의미의 변화는 없다는 게 이 공동대표의 시각이다.
 
이 공동대표의 개헌안 평가 자료에 따르면 입법권이 국회에 있다면 입법권은 국회로부터 나오는 것이 된다. 이는 헌법 제1조 제2항의 '...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고, 또한 지방정부의 입법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는 입법권의 국가독점을 규정한 것이다.
 
입법권의 국회독점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데 우선, 지방입법권의 부정이다. 적어도 지방정부의 일차적 입법권은 이 규정으로 인해 부정된다. 지방정부를 입법권의 주체가 될 수 없도록 규정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권력이 국가에 독점된다는 것은 아무리 다른 권력을 분권한다고 한들 20%도 안 되는 분권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통령 헌법개정안엔 사법권분권은 아예 제외하고 있어, 지방분권은 잘해야 1할5푼 분권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국민입법의 부정도 큰 문제로, 대통령 헌법개정안 제56조는 법률안국민발안권을 규정하고 있으나 헌법 제40조에는 이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 개정안 제43조와 제56조간의 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개정안 제56조가 국민발안권을 규정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않고, 전적으로 법률에 포괄적으로 위임하고 있어 작동불능의 제도로 전락될 위험이 크다.
 
입법권의 국회(국가)독점으로 국회는 수요자인 국민을 위한 입법을 하려는 노력을 할 동기가 없다는 심각한 문제까지 발생한다.
 
경쟁기관이 없으므로 국회는 국민을 위해 입법의 품질을 개선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결과는 불량입법의 양산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아울러 모든 나라의 지방분권에서 입법권규정이 가장 핵심인데 비해 대통령 헌법개정안에는 입법권배분에 관한 규정이 없다.

입법권의 국회독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이차적인 입법권의 배분도 전적으로 법률에 위임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개정안 제121조 제4항:국가와 지방정부 간, 지방정부 상호 간 사무의 배분은 주민에게 가까운 지방정부가 우선한다는 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다).
 
특히 대통령 헌법개정안에는 행정권이나 사법권의 분권도 규정된 것이 없으므로 실제로 분권이 이뤄진 게 없다.
 
이와 함께 개정안 제121조 제4항은 '국가와 지방정부 간, 지방정부 상호 간 사무의 배분은 주민에게 가까운 지방정부가 우선한다는 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한다'고 해 보충성의 원칙과 정부간 사무배분을 한꺼번에 규정하고 있다.
 
보충성의 원칙은 법률제정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헌법제정이나 개정에도 적용된다. 헌법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정부간 권한배분에 관한 것이다.
 
즉, 헌법에서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권한배분을 배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헌안은 이를 포괄적으로 법률에 위임함으로써 보충성의 적용범위를 헌법에서 법률로 축소시키고 있다.
 
게다가 정부간 권한배분인 지방분권을 법률에 백지위임하고 있어 대통령 헌법개정안은 지방분권을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는 개정안 제79조(대통령령)와 제99조(총리령과 부령)를 폐지하지 않는 한 법률에서 명령에 위임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설사 막는다 하더라도 국회가 법률로 정한다고 해 지방정부에 대한 간섭이 줄어드는 것은 기대할 수 없고 오히려 행정실정을 모르는 국회가 법률로 자치권을 더욱 제약할 수도 있다.
 
 

자치재정권, 지방정부 과세자율 제약

조국 민정수석이 21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대통령 개헌안 가운데 지방분권, 경제에 관한 부분을 발표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 조 민정수석, 김형연 법무비서관. 2018.03.21. / 뉴시스

개정안 제124조 제2항은 '지방의회는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 자치세의 종목과 세율, 징수 방법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세의 세세한 부분까지 법률로 정해 놓으면 새로운 지방세를 조례로 정하는 순간 법률위반이 돼 지방과세권은 무용지물이 된다.
 
지방정부가 과세권을 갖기 위해서는 지방정부가 독자적인 세목의 설정과 세율결정권을 가져야 하는데 법률우위와 법률유보, 국가의 법률제정권의 무제한 행사로 인해 헌법개정안의 규정은 사실상 활용되기 어렵다.
 
제3항의 '조세로 조성된 재원은 국가와 지방정부의 사무 부담 범위에 부합하게 배분돼야 한다'는 조항도 실효성이 크지 않다. 지방정부 사무배분이 개정안 제121조 제4항에 따라 법률로 규정되므로 지방세재원 역시 사무배분법률에 종속된다. 더구나 사무처리비용을 전국적으로 산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방세의 범위는 국가가 정하는 법률에 예속되며, 이 헌법개정안의 규정에 의해 실제로 보장되는 것은 거의 없다.
 
그나마 의미를 가지는 것은 위임사무의 비용부담을 위임하는 정부가 하도록 하는 것, 재정조정제도의 헌법적 근거를 신설한 점이다. 이는 국회자문위가 제안한 것을 일부 수용한 것이다.
 
자치조직권 또한 지방조직에 관한 사항을 기본적인 사항을 법률로 정하고 구체적인 사항은 조례로 정한다고 해 모든 것을 법령으로 정하는 현재보다 조직권이 강화된 것으로 보이지만 무엇이 기본적인 사항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
 
변형입법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법률로 경직된 조직의 틀을 깨는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된다는 점에서 개정안의 의미는 별로 크지 않다.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바꾼 것 역시 획기적이지만, 명칭을 바꾼다고 해도 자치입법권 등 자치권이 실제로 강화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지방분권국가의 선언도 마찬가지다. 그것마저도 '지방분권국가다'가 아니라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고 규정해 규범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대통령 헌법개정안에서 양원제의 도입이 빠진 것은 큰 오류라는 게 이 공동대표의 시각이다.
 
양원제는 국회의 권력을 양원이 공유하고 서로 견제와 경쟁을 하도록 해 불량입법을 막고, 권력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국회운영에 경쟁원리를 도입한 것이다.

인구 3천만이상의 국가중에서 양원제를 채택하지 않은 나라는 중국과 터키를 제외하면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따라서 국회논의 과정에서 지방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위한 상원제도의 도입은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
 
제2국무회의로 국가자치분권회의를 설치한다고 하지만 대통령이 의장이고 국무총리가 부의장을 맡아서 진행을 하게 되면 을의 입장에 있는 지방대표들이 지방이익을 대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법률제정과정에서 지방의 이익을 대변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에 이 공동대표는 "이제 공은 국회로 넘겨졌다. 국회는 그 동안 정쟁으로 직무유기한 헌법개정을 반드시 마무리해야 한다"면서 "땅에 덜어진 국회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21세기를 여는 지방분권적 헌법개정안을 합의해 국민 앞에 제시하고 국민의 이름으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하게 촉구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