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한 개인과 사회는 어떻게 발전할까. 단순히 산업이 발전하고 생활수준이 나아지면 삶이 풍요로워질까. 일견 그럴 수도 있다. 경제적인 문제는 개인적인 '삶의 질'과 사회의 질적 수준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를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경제적 수준과 자본의 문제도 있지만, 문화적 자본과 상징적 자본도 있다. 참고로 상징적 자본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한 사회의 비가시적(non-visible) 토대를 이루는 중요한 자본이다. 사람들이 음악회나 미술 전시회 등, 문화활동에 얼마나 참여하는지, 평상시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활동을 활발하게 하는지, 사회 전반의 포용력(tolerance)은 어떤지 등을 말한다.

경제적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은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중요 요인이 된다. 사회적인 문제는 사회구성원들이 어떤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 발전 시켜나가는지 등의 문제와 관련성을 갖는다. 문화적인 문제 마찬가지다. 상징적인 문제는 개인의 가치관과 철학적 문제를 담는 문제다.

이런 수준까지는 개인이든 어느 사회든 일정한 시간과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사회, 문화적인 현상이다. 예컨대 초기 단계, 이후 빠르게 성장하는 가속화 단계, 발전 속도가 둔화되는 종착 단계로 이어지는 도시의 발달 단계와 비슷하다. 하지만 종착단계에 이르면 여러 가지 부정적인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인간의 파편화, 물신주의, 향락주의, 자기중심화 등의 문제들이다. 이런 사회병리적인 문제들이 더욱 심화되면서 해결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의 내면문제에 관심을 갖는 일이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영성사회, 영성교육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동안 우리가 경제문제, 즉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자신의 내면문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유와 성찰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문제'다.

전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돌아보는 문제다. 지금의 내 모습을 좀 더 긍정적인 쪽으로 더욱 승화 발전시켜나가려는 태도다. 내 삶에서 만족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도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자세,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을 수용하는 태도 등이다. 일본의 작가 소노 아야코의 '간소한 삶'에서 말한 "살면서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자신의 성찰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자기 감시'이다. 자기 감시란 타인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을 말한다. 겉으로는 서구사회처럼 개인주의화한 것 같지만, 여전히 남들의 시선을 삶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이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불행도 내 삶의 일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후자의 문제는 타인에 대한 사유와 성찰의 문제,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주변을 이해하려는 문제다. 이 문제는 어떤 의미에서 심리에세이 작가 김연경이 말하는 '충·탐·해·판'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될 수 도 있다. 그에 의하면 '충'은 충고, '탐'은 다른 사람에 대한 탐색, '해'는 해석, '판'은 판단을 의미한다. 이런 태도는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유 때문에 김연경은 타인에 대한 충고나 비판 등을 쉽게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이런 태도는 주변사람들에 대해 말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너무 쉽게 판단하고, 너무 쉽게 비판하고, 너무 쉽게 충고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문제가 없는데 네가 문제라는 식의 태도를 견지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런 여러 문제들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사유와 성찰일 것이다. 사유와 성찰의 남의 문제가 아닌, 곧 나 자신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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