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소장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최근 대중매체에서 속삭이는 소리, 화장품의 뚜껑을 여는 소리, 단단한 과자를 먹는 소리처럼 몸과 정신을 이완시키는 소리를 'ASMR'이라고 칭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ASMR이란 자율감각 쾌락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줄인 말로 정식 학술 용어는 아닙니다. ASMR이라는 용어를 쓰기 전에도 우리는 기분 좋은 소음을 뜻하는 말로 '백색소음'이라는 단어를 썼는데요, 여러 사람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때 공부가 잘 돼 카페에서 공부한다는 사람처럼 백색소음은 뭔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소음의 유형에는 특정 음높이를 유지하는 '칼라소음(color noise)'과 비교적 넓은 음폭의 백색소음(white noise)이 있습니다. 백색소음이란 백색광에서 유래됐는데요, 백색광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7가지 무지개 빛깔로 나눠지듯, 다양한 음높이의 소리를 합하면 넓은 음폭의 백색소음이 됩니다. 백색소음은 우리 주변의 자연 생활환경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생활환경에 따라 주변소리가 다르듯이 백색잡음도 다양한 음높이와 음폭을 갖습니다.

우리 생활주변에서 들리는 백색소음으로는 비오는 소리, 폭포수 소리, 파도치는 소리, 시냇물 소리, 나뭇가지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 등이 있습니다. 이들 소리는 우리가 평상시에 듣고 지내는 일상적인 소리이기 때문에 이러한 소리가 비록 소음으로 들릴지라도 음향 심리적으로는 별로 의식하지 않으면서 듣게 되고, 항상 들어왔던 자연음이기 때문에 그 소리에 안정감을 느끼게 됩니다. 게다가 자연의 백색소음을 통해 우리가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서 주변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는 보호감을 느끼게 돼 듣는 사람은 청각적으로 적막감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실험으로 소음도 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습니다. 먼저 사무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백색소음을 평상시 주변소음에 비해 약 10데시벨(dB) 높게 들려주고 일주일을 지냈더니 근무 중 잡담이나 불필요한 신체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한 달 후 백색소음을 꺼버렸더니 서로들 심심해하면서 업무의 집중도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즉 백색소음이 없는 것보다 어느 정도 있는 것이 업무의 효율성을 증대시켰습니다.

또한 자연의 백색음을 학생들에게 들려주면 학습효과가 크게 개선되는데요, 남녀 중학생을 대상으로 서울 노원구 소재의 한 보습학원에서 영어단어 암기력 테스트를 실시했습니다. 일상적인 상태와 백색음을 들려주었을 때의 상태에 따라 전혀 새로운 고교 2학년 수준의 영어단어를 5분간 암기하도록 했는데, 평소에 비해 학업성취도가 35.2%나 개선됐습니다.

실험 결과를 좀 더 명확히 입증하기 위해 백색소음을 들려주었을 때의 뇌파반응을 검사해 봤습니다. 한 의과대학의 도움을 받아 피 실험자에게 백색음을 들려주고 뇌파를 측정했더니 베타파가 줄어들면서 집중력의 정도를 나타내는 알파파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이는 뇌파의 활동성이 다소 감소되고 심리적인 안정도가 크게 증가했다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실험으로 우리 주변의 자연음을 들려주었을 때 집중력의 변화를 관찰했습니다. 5분 단위로 주변의 소리를 다양하게 들려주고 10대, 20대, 30대 등 연령대별로 공부 중 신체의 움직임을 관찰했습니다. 10대와 20대 피 실험자는 약수터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소나기 내리는 소리 등 비교적 넓은 음폭의 소리를 선호했고, 이때 공부의 집중력이 높아졌습니다. 한편 30대는 작은 빗소리나 큰 시냇물 흐르는 소리 등 중음 폭의 백색소음을 더 선호하면서 업무 집중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이렇듯 듣는 사람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소음이라도 백색소음은 우리 생활 주변의 자연소리와 유사하기 때문에 건강에 좋은 소리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회가 첨단화될수록 사회 요소요소에 백색소음의 수요가 점차 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오감 중에서 청각과 촉각을 만족시키는 백색소음에 대한 연구가 더 많이 진행돼 인간에게 두루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길 바랍니다. /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제공 : 미래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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