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 2층 여탕의 비상구는 철제 선반이 막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소방방재신문이 23일 보도했다.2017.12.23. / 뉴시스

작년 12월, 29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참사의 원인은 열손가락을 꼽아도 모자랄 정도다. 불법 증개축, 소방관들의 늦장 대응, 열악한 소방 장비와 인력, 잠자는 소방 관리 법률, 불법주정차, 부실한 소방점검 등 수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2층 여탕의 비상구를 폐쇄했다는 점이다. 당시 사망자가 가장 많았던 여탕의 비상구 앞은 커다란 수납장이 가로막힌 채 잠겨있어 긴급대피통로로서 역할을 전혀 못했다. 남탕의 비상구가 오픈돼 전원 대피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비상구만 제 기능을 했어도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제천참사의 교훈이다. 하지만 그 뒤에 다중이용시설의 안전관리가 개선됐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긴급 화재발생시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찜질방 안전관리 실태가 최악이라는 보도는 안전의식이 바뀌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준다.

최근 정부가 전국 29만8천 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가안전대진단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다. 이번 점검에서 전국 찜질방 1천341곳 중 38.4%(515개소)에서 지적사항이 발견됐다. 놀라운 것은 제천참사 때와 동일하게 비상구 앞에 물건을 쌓아두는 행태가 가장 많았다는 점이다. 화재 경보 또는 스프링클러의 자동 작동 스위치를 의도적으로 꺼 놓은 곳도 10곳에 달했다. 방화문이 훼손됐지만 그대로 방치했거나 습기로 인한 화재설비 부식 등 관리 불량도 다수 지적됐다. 이 같은 부실관리로 과태료가 부과된 곳도 96곳(21.5%)에 달했다. 이런 찜질방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어떤 비극적인 결과가 나올지 안 봐도 뻔하다.

제천참사 이후 다중이용시설의 안전관리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는 속담이 흔히 쓰인다. 일을 그르친 뒤 아무리 뉘우쳐도 이미 늦었다는 뜻이지만 그래도 개선해 나가려고 하는 의지를 보여야 동일한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다. 하지만 찜질방 안전진단 결과는 제도개선을 하지 않는 한 우리사회의 안전의식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찜질방을 포함해 3층 이상 다중이용시설에 층별로 안전대피공간(6.6㎡이상)설치를 의무화할 방침이지만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행정안전부는 "국가안전대진단으로 우리 사회의 안전 수준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한다. 국가안전대진단은 세월호참사 이듬해인 2015년 도입돼 올해로 네 번째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년여 간 우리의 안전수준은 높아지기는 커 녕 외려 낮아졌다. 불과 3개월여 사이에 잇따라 발생한 제천화재참사, 밀양요양병원 화재참사가 이를 증명한다. 안전관리가 부실한 곳은 찜질방 뿐 아니다. 노인요양병원·시설, 대형공사장, 숙박시설등도 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안전불감증'이라는 뿌리 깊은 고질병을 치료하려면 제도개선, 처벌강화, 의식개혁 등이 한꺼번에 이뤄져야 한다. 재난이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땜질식 처방에 그친다면 다중이용시설의 안전관리는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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