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컬쳐디자이너·에세이스트

세종대왕과 초정약수축제 초정워터페스티벌 / 중부매일 DB

"상서로운 복이 하늘로부터 왔으니, 역사에 전해오던 그곳이 실로 있다하고. 조선의 오랜 서원 땅에서, 오늘 분명 좋을 샘을 찾겠네." 세종 즉위 후 예조판서를 지낸 하연(河演)은 대신들이 전국을 다니며 좋은 물을 찾아 다녔던 그날의 이야기를 이렇게 시로 읊었다. 서원 땅에 좋은 샘을 찾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바로 초정약수였다. "성대에 도천 사랑하는 것을 누가 보았나, 신령한 물줄기 흘러흘러 은하수를 쏟아 붓는 듯. 성대한 은택을 두루 펴서, 삼한의 백성들을 순천(舜泉)에 취하게 하리라." 세종과 함께 초정에 머물며 왕을 보필하고 학문연구에 몰두했던 박팽년은 이렇게 초정약수의 신령스러움을 노래했다. 또한 초정약수의 발견을 임금의 은총으로 묘사했다.

"홀연 신선의 마을 별천지 나타나니, 해와 달도 세간의 것과는 다르네. 신선의 술잔으로 요지에서 마시느니, 향기롭고 달콤한 물을 한 움큼 마시는 게 낫겠지." 박팽년과 함께했던 신숙주도 초정약수를 향기롭고 달콤하다고 표현했다. 또 "물 한 사발 들이켜니 마음도 시원하구나"라며 그 맛을 찬미했다.

특히 신숙주는 초정행궁의 한유로운 풍경을 시로 묘사했다. "늦은 봄 행궁에 비가 맑게 개이자, 눈에 드는 산천 그림으로도 형용키 어렵네. 상 물리고 때로 머리 돌려 먼 곳을 바라보니, 복숭아꽃 오얏꽃 핀 건너 마을 맑기도 하네." 조선의 초정리 풍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높고 푸른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아래로는 맑은 하천이 흐르는 곳이다. 이웃마을에는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피었으니 꽃들의 낙원이다. 오얏꽃은 조선 궁궐을 상징하는 꽃이다. 순결하고 청빈하니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땅 신령이 신비를 빚어내어 그 까닭 헤아릴 수 없으나, 은하수 한 줄기가 통하는가 싶도다. 향기로운 액체가 신묘하게 엉기어 온갖 병을 물리치고, 푸른 물줄기는 흐르고 흘러 삼농(三農)을 살리네. 고요할 땐 거울을 끌어놓은 듯하고, 움직일 땐 거문고 소리를 내여 순풍을 뛴 듯하다. (중략) 목욕하심을 보고 백성들이 기뻐하던 날, 신하들은 춤추며 만세를 부르네" 조선의 문인 방문중의 노래다. 그는 초정의 물이 온갖 병을 물리치고 풍요롭게 한다고 했다. 거울처럼 맑고 거문고 소리까지 낼 지경이다. 임금이 목욕하는 것을 보고 백성들이 만세를 외쳤다니 이곳이야말로 평화의 마을, 유토피아가 아닐까.

"산은 높고 샘물 맛은 좋은데다가, 풍속이 순후하고 아름답다네. 여염집은 땅에 바짝 붙어 있으며, 뽕나무는 들판 빼곡 자라났다네. 샘물 맛은 달고 땅은 비옥하거니, 저 반곡의 골짜기와 같지 않다네. (중략) 콸콸 샘 밖으로 솟아오르고, 꽉 채운 뒤 넘치어서 넘실대누나. 백성들이 앓는 병을 다 치료하여, 온 세상을 수역에다 올려놓는구나." 충주 출신의 문신 이승소는 이렇게 초정리의 풍경과 초정약수의 신비스러움을 예찬했다.

또한 이승소는 "하늘과 땅이 서기를 빚어 신령스런 샘이 나니, 세조께서 이 해에 수레를 멈추었네. 사람들이 임금이 계신 곳의 풍악소리를 듣고, 다투어 고운 해가 지는 것을 보았도다. 어찌 사람의 일이 뜬구름처럼 변할 줄 알았으랴, 오직 행궁에 낙조가 걸렸음을 볼 뿐이로다"라며 세조의 행차를 묘사했는데 세종의 초정행궁 20년 만에 세조가 초정에 들러 이틀간 머물다 갔다.

변광섭 컬쳐디자이너·에세이스트

초정을 노래한 시는 조선시대에만 100여 편에 달한다. 훗날 한글학자 최현배는 세종의 발자취를 따라 초정약수터를 방문했다. 1932년 8월 어느 날이었다. 그는 초정약수로 목을 축였다. 그날의 감회를 동아일보에 '한글순례, 청주에서'라는 제목으로 2회에 걸쳐 특별기고 했다. "세종대왕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느낌"이라며 감격의 메시지를 남겼다. 이처럼 초정은 아름다운 풍경이 깃든 치유의 숲이며 태평성대를 알리는 풍요의 땅이다. 사람들의 가슴에 꽃이 피고 시심에 젖는 시인의 마을이다. 삶에 지친 우리에게 기적처럼 다가오는 여백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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