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개나리 / 중부매일 DB

매화가 설경속의 꽃을 피워 멋을 뽐내더니, 생강나무와 산수유 개나리가 노란 얼굴로 화사하게 길손을 맞고 있다. 학교 가는 길엔 빨강노랑파랑 때때옷 입은 꼬마들이 줄지어가고 노란 민들레가 보도블록 사이에서 방글 거린다. 노랑나비한 쌍이 아이들 머리위로 날아오르며 춤을 추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무심천 벚나무가 하나둘 꽃을 피우고 하얀 목련이 하늘을 향하여 폭죽을 터트리고 있다. 까치 내 가는 길에 수양버들이 그네를 뛰고 들판 여기 저기 거름더미가 보인다. 경운기는 논밭을 갈며 봄노래를 부른다. 토요일 쉬는 날 온가족이 봄맞이 겸 심어 놓은 감자밭을 다독거리러 길을 나섰다.

딸기 묘가 돋아나고, 정구지가 벌써 한 뼘씩 자랐다, 참나물, 곰보 배추도 제 모습을 드러내고 키 재기를 시작 하였다. 정구지 밭에 불청객처럼 끼어들어 함께 살자고 떼 부리는 풀들이 많다. 종지나물 냉이 꽃다지 이름도 알 수 없는 풀들이 마구 돋아 있는 것을 뽑는다. 정구지 밭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정구지 본연의 제구실을 하지 못하도록 끼어든 잡풀을 참빗으로 아가의 머리를 빗기듯 하나하나 고르며 뽑아냈다. 말끔하게 뽑아내고 호미로 밭을 일군다. 퇴비와 비료를 주고 정리를 하고 나니 깔끔하다.

앞마당에 모닥불을 피우고 가족들이 둘러앉았다. 준비 해온 김밥과 삼겹살 조개를 굽는다. 꼬마들은 불장난이 재미있는지 은박지에 고구마를 싸서 묻느라고 바쁘고 지글거리며 굽고 있는 고기 냄새가 붕붕 떠다닌다. 왁자지껄 사람 사는 집 같다. 정원에 뾰족뽀족 수선화가 꽃망울을 매달고 올라오고 목단은 붉은 잎 사이로 꽃망울을 키우고 있다. 진달래나무를 휘감고 미선나무가 하얀 꽃을 피웠다.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개나리 울타리는 치자 빛으로 물들고 명자나무 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면 우리 집은 꽃 대궐이 된다. 앵두나무는 연분홍 꽃으로 치장을 하고 살구나무 꽃이 피면 벌 나비는 역사하기 바쁘다. 구석구석 내 손길로 다듬어진 이집 주인이 된지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들딸을 잘 보듬어 키워 제짝 찾아 떠나보내고 터 너른 이집에 노부부가 되어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 손주들을 앞세우고 이렇게 찾아오는 날이면 잔치 집처럼 웃음꽃이 피어난다. 틈틈이 담가두었던 효소와 더덕주를 맛보이며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어도 아깝지 않은 자식들을 바라보며 세상사는 멋을 한껏 누려본다. 뒤뜰 언덕배기엔 고사리와 취나물도 올라오고, 박태기가 분홍 꽃을 밥풀처럼 매달았다. 장독대엔 장 익어가는 냄새가 구수하다.

이진순 수필가

뒤늦게 시집간 막내딸이 내일 모래 다가 올 아가 백일잔치 할 계획을 식구들에게 이야기 한다. 보름달처럼 보행기 안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아기가 귀엽기만 하다. 이제 더 무엇이 부러우랴. 며칠 전만 해도 종잡을 수 없었던 날씨와 지상과 지면의 뉴스는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봄은 찾아왔다. 온통 꽃 잔치를 펼치고 있다. 올 곧은 마음으로 윤리와 도덕을 중시하며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며 배려하고 살다보면 자연을 닮아서 평화스러운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한반도의 평화를 가꾸기 위하여 한미 중국과 북한의 줄다리기 게임은 이어지고, 하느님을 섬기는 교회에서는 자비와 평화를 구하는 부활절 기념기도가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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