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미영 변호사

2018년 4월 3일 청주 무심천변의 만개한 벚꽃 / 중부매일 DB

며칠 전 사무실에서 전화기를 어깨에 끼운 채 통화발신음을 들으며 상대방의 착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 손을 쉬어도 될 텐데, 그 와중에도 키보드 자판을 정신없이 누르며 급한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지인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한 통 받고, 갑자기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멈추게 되었다. 문자메시지는 그다지 특별한 내용은 없었고, 다만 개나리꽃이 활짝 핀 도로변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문득 '설마 벌써 꽃이 필 때가 되었나'싶어, 날짜를 보니, 정말 4월이었다.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침에 회사에 늦지 않게 출근하느라 길가에 피어있는 꽃을 볼 여유가 없고, 퇴근시간에는 이미 어두워진 이후여서 꽃을 볼 래야 볼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주말 외출을 하기 전에는 '오늘 미세먼지가 어떤지'를 먼저 살피고, 특히 요즈음에는 실외보다는 실내에서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보니, 길가에 피어있는 꽃을 볼 기회가 더욱 줄었다.

지인이 보내준 꽃 사진 한 장에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창 밖에 피어있는 꽃을 보고나니, 오늘 하루를 사느라 겨우내 기다렸던 봄이 오는 것도 모르고 사는구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살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노력해야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지만, 가끔은 길 가에 피어있는 꽃도 살펴보고, 비가 오는 소리도 가만히 들어보고, 삶에 치여 연락이 뜸한 오랜 지인에게 안부도 묻는 정도의 여유는 가져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필자는 의뢰인으로부터 소송을 위임받아 대리하는데, 송무란 것인 쉽게 표현해보자면 결국 남을 대신해서 싸워주는 일이다보니, 필자는 업무시간 중 대부분을 남과 싸울 준비를 하거나, 법정에서 다투는 일을 하는데 보내고 있다.

비단 필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글같은 사회에서 전쟁처럼 살다보니, 생존과 무관한 꽃을 보며 감상에 젖을 시간은 없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생산적인 일이 아니라면 자신의 감정,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 없이 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필자 역시 미래에 더 잘살기 위해 오늘을 마땅히 희생해야한다는 생각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한번 뿐인 인생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현재를 즐기며 살아야한다'는 YOLO를 무작정 지지하기에는 소심하고, 겁이 많다. 그래도 치솟는 물가, 언제 끊길지 모르는 소득이라는 무서운 현실에 부딪혀 살다보니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이처럼 삶을 어두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냥 흘러가는대로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좀 더 열심히 현재를 즐기며 삶의 밝은 면을 보려 노력하겠다는 YOLO를 내심 응원하고 싶다. 당장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더라도 현재를 즐기며 살다보면 내일을 위해 양보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다.

이미영 변호사

물론 큰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산 정상을 바라보기보다는 고개를 숙이고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해서 올라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매 순간 고개를 숙이고 한 걸음 내딛는 것에만 집중하며 산을 오르다보면 주변에 핀 꽃의 아름다움, 산 중턱에 피어있는 안개의 신비로움, 심지어 산을 오르며 들이쉬고 있는 공기의 싱그러움 등 산을 오르면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것을 모두 놓칠 수 있다.

때로는 높은 산을 오를 때는 잠시 쉬며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또 막상 쉬려하면 '쉬면 다시 오르기 어려울까' 잠깐의 휴식을 두려워한다. 스스로 쉬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자신의 결정에 따라 '쉼'이라는 실행에 옮긴 사람은 다시 출발할 용기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남이 평가하는 삶의 무게에 기준을 삼아 자신을 쉴새없이 다그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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