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사람들은 '올드보이들의 빅매치'라고 한다. 이시종 충북지사와 오제세 의원이 맞붙는 더불어민주당 충북지사 후보 경선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정치와 행정 경험이 풍부한 이들 노장(老將) 정치인은 수십 년간 정치적인 부침(浮沈)없이 비교적 순탄한 '꽃길'을 걸어왔지만 이제 충북지사 경선이라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누군가 한사람은 쓸쓸히 퇴장해야 한다.

이들의 정치인생은 화려한 스펙으로 점철돼 있다. 집안환경은 전혀 다르지만 둘 다 서울대를 나와 행정고시를 패스한 엘리트 행정관료 출신이다. 나이도 비슷하다. 이 지사는 72세, 오 의원은 70세다. 이 지사는 '선거불패'라고 불린다. 충주시장, 국회의원, 도지사 등 단 한번 도 패한 적 없는 놀라운 선거경력을 수식하는 말이다. 하지만 오 의원도 뒤지지 않는다. 총선만 네 번을 치렀지만 당선 증을 빼앗긴 적이 없다. 둘 다 능력과 실력, 운을 동시에 갖췄다고 할 만하다. 내향적인 성품으로 신중하고 꼼꼼하며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성실한 편이다. 둘 다 정치인 보다는 관료형 스타일이다. 당내 경선은 진검(眞劍)승부가 예상된다. 본선보다 예선전이 더 주목받는 이유다. 그래서 이들 무게감 있는 후보들을 상대로 미디어의 조명을 받고 인지도를 올려야 하는 박경국 자유한국당 후보와 신용한 바른미래당 후보에겐 악재다. 하지만 이들의 과거를 뒤돌아보면 미래가 보인다.

이 지사의 3선 도전은 어쩌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재선에 성공했지만 지난 8년간 내세울만한 업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외려 대형 현안사업마다 모조리 좌초한 것도 뼈아프다. 무엇보다 적지 않은 나이도 고민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작년 대선에서 보수정당이 분열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했다. 선거환경이 바뀐 것이다. 더구나 과거 상대였던 정우택 의원, 윤진식 전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중량급 정치인들과 맞대결을 펼친데 비해 이번엔 인지도에서 우위에 있고 3자 대결이다. 아무래도 유리한 구도라고 할 수 있다. 경선만 피했다면 3선 고지가 무난한 최상의 환경이었다. 당선된다면 더 이상 관운도 없다.

오 의원의 충북지사 도전은 당연한 결심이다. 다선이지만 친문(親文)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당내에서 존재감은 크지 않다. 연령대와 입지로 볼 때 다음 총선에서 공천 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 때문에 당 지도부가 제 1당을 지키기 위해 현역의원 공천배제론을 내세웠을 때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차피 '모'아니면 '도'다. 충북인구의 절반이상인 청주에서 지역토박이로 4선을 했다는 점도 강점이다. 평소 성품이 부드럽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선 독기(毒氣)를 품은 듯하다. 각종 지역행사에선 인사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 든 안주든 무작정 단상에 올라가서 마이크를 잡아 화제를 모았다. 이 지사에 대한 공격도 날카롭다. 이 때문에 사람이 달라졌다는 말까지 듣는다. 양측은 때론 거칠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민주당 분위기는 느긋하다. 양측의 경쟁이 부작용보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외려 컨벤션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있지만 누가 공천을 받든 본선에서 자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둘 중 한 명이 설사 당선된다고 해도 이번 선거가 마지막이 될 공산이 크다. 나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지사는 선수 제한에 걸려 3선 이상 할 수도 없다. 오 의원은 이번 경선의 프레임을 '피로한 선장의 교체'로 잡았지만 이는 비단 이 지사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둘 다 정치인으로 누릴 만큼 누렸다. 오로지 당선가능성 때문에 출마한다면 단순히 정치적인 수명을 4년 연장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민주당의 높은 지지율과 좌충우돌 지리멸렬한 야당 탓에 민주당 후보들은 고무돼있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하지만 단 한번 도 좌절을 겪지 않고 지역주민들에게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온 이 지사와 오 의원은 달라야 한다. 당선여부는 두 번째다. 이젠 충북의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굳이 4차산업 혁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사회는 눈부시게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 각종 지역현안이 난마(亂麻)처럼 얽혀있다. 진부하고 고질적인 관행과 타성을 혁파할 수 있는지, 참신한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마인드로 비전을 제시하고 충북도정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봐야 한다. 충북지사 이전에 존경받는 정치인이 되려면 과연 무엇 때문에 출마하려 하는지, 그것이 진정 지역발전을 위한 선택인지, 마지막 4년간 과연 무엇을 남길 것인지 도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답을 내놔야 한다. 그게 정치인생을 아름답게 마감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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