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괴산경찰서는 지난 6일 충북 증평의 한 아파트에서 세 살 배기 딸과 함께 숨진 40대 여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이 남편과 사별한 뒤 신변을 비관했거나 평소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을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2018.04.09. / 뉴시스

최근 충북 증평의 모 임대아파트에서 40대 여성이 4살 난 어린 딸과 함께 숨진 지 세 달여 만에 발견됐다. 이번 사건은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소외된 가정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다.

40대 여성은 심마니인 남편이 10개월전 자살한 이후 수천만원에 달하는 빚 독촉에 시달리고 사기혐의로 피소당하면서 "혼자 살기가 너무 힘들다. 딸을 먼저 데려 간다"는 유서를 남기고 운명을 달리 했다.이 모녀가 사는 아파트 우편함에는 카드 연체료와 수도요금·전기료 체납 고지서가 수북이 쌓여 있었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기댈 곳 없는 모녀에게 하루하루는 절망스런 나날이었을 것이다.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에는 수도사용량이 작년 12월부터 0으로 표시된 것으로 보아 사망한지 한참 지났지만 이웃도, 관리사무소도 몰랐다. 사망한 모녀가 발견된 것은 관리비 연체가 계속되자 관리사무소측이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이웃, 지자체, 국가 등 그 누구도 이들 모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빈곤과 외로움이라는 절박한 현실에서 삶의 의욕을 상실한 증평 모녀에게 4년 전 우리사회에 충격을 준 '서울 송파 세모녀 사망 사건'이 오버 랩 된다.

송파 세 모녀 역시 지독한 생활고를 겪다가 집에서 번개탄을 피워 놓고 동반 자살했다. 지하 셋방에서 살던 세 모녀는 질병을 앓고 있었으나 일정한 수입이 없어 병원은 커 녕 먹고살기도 막연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국가와 자치단체가 구축한 어떤 사회보장체계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이들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70만 원, 그리고 집주인에게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복지의 사각지대가 거론될 때 마다 등장하는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4년이 지났어도 사회안전망이 강화됐다고 보기 어렵다. 이 사건 이후 복지관련 법안이 개정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그해 12월 송파 세 모녀 법으로 불리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과 '긴급복지 지원법 개정안',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 발굴에 관한 법률' 제정 등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3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지만 이번 '증평 모녀'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특히 증평군은 기초생활 보장 수급권자나 차상위계층 외에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가정을 발굴하기 위해 지난해 9월 32개 기관 113명으로 '쏙쏙 통'을 운영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제 기능을 못한다면 '전시행정'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증평군이 '쏙쏙 통'이라는 사회안전망을 좀 더 촘촘하고 실질적으로 운영했으면 모녀를 살릴 수 있었다. '송파 세모녀'와 '증평 모녀'의 비극은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건은 이웃과의 정이 사라지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삭막하고 메마른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정부가 빈곤으로 고통 받는 소외된 국민들을 소홀히 한 채 올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 3만 달러 돌파와 국민 삶의 질 향상만 강조한다면 선진국 진입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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