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시장 29년 터줏대감… 쫄깃한 면에 '시골 손맛' 담았다

29년 국수 외길을 걸어온 우암국수는 북부시장 점포 중 가장 먼저 불을 밝힌다./신동빈

[중부매일 연현철 기자] 7일 새벽 4시 30분 청주북부시장의 어두운 골목길을 환히 밝히는 간판불이 켜졌다. 29년간 한 자리에서 국수와 만두피를 만들어 판매하는 '우암국수'다.

빛과 함께 반죽 기계 소리가 새어나오는 유리창 너머로 연육흠(63)·장명옥(62·여)씨 부부와 이들의 둘째 아들 연춘범(37)씨가 국수 만들기에 정신이 없다. 가뜩이나 좁은 공간에 큰 몸집의 기계가 놓여 있지만 연 씨 가족은 동선 한 번 엉키지 않았다. 작업에는 어떠한 대화도 없었다. 이들의 의사소통은 오직 눈빛 뿐이다.

아버지는 20㎏의 밀가루 포대를 들어 반죽 기계에 털어 넣고 아들은 얇게 펴진 밀가루 반죽을 수건 접듯 접어 어머니에게 전달한다. 바통을 이어받은 어머니는 적당한 굵기로 잘라 비닐봉지에 담았다.

장명옥 씨가 칼국수 면을 정리하고 있다./신동빈

연 씨 가족의 찰떡궁합으로 완성된 칼국수는 가게 앞 평상에 가지런히 줄을 맞춰 진열된다. 작업을 시작한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가게 창틀과 바닥을 비롯해 연 씨 가족은 말 그대로 밀가루 옷을 뒤집어 썼다.

하루에 작업하는 밀가루의 양만 10포대가 넘고 칼국수 면만 500~600인분을 만든다. 어마어마한 제조 분량이지만 연 씨 부부는 이정도는 식은죽 먹기라며 웃어 넘겼다. 연 씨 부부는 명절을 앞둔 한달 전부터는 온 가족이 달려들어 일을 해도 주문량을 다 못 맞출 정도로 분주하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명절을 앞두고는 평소의 5배가 넘는 양을 작업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암국수는 이미 북부시장을 넘어 청주에서 소문난 국수집임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일을 돕기 시작했다는 연춘범 씨는 주로 힘 쓰는 일을 맡고 있다. 창고에서 무거운 밀가루 포대나 반죽을 짊어지거나 포장된 국수를 밖으로 옮겼다.

온몸에 밀가루를 가득 묻힌 우암국수 연육흠(왼쪽), 장명옥(가운데) 부부와 둘째 아들 연춘범씨가 환한 미소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신동빈

연춘범 씨는 부모님이 연세가 들면서 부쩍 힘에 부치는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보다 하던 일을 접고 가업에 뛰어 들었다고 전했다. 어렸을 적부터 국수를 가장 많이 먹은 것 같다는 연춘범 씨. 그토록 질릴 정도로 먹었지만 그에게 있어서 국수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다.

그는 6살된 딸이 자신이 어렸을 때처럼 국수를 야무지게 먹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자부했다. 연춘범 씨에게 국수는 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자랑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만들던 국수에서 이제는 아빠가 함께 만드는 국수가 됐기 때문이다.

'우암국수'도 여느 가게들처럼 처음부터 사람들로 북적이고 장사가 잘 된 것은 아니었다. 연 씨 부부는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장사를 접고 시장 골목에 있는 가게를 인수해 국수 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희망과 달리 이른 새벽에 이뤄져야 하는 작업과 부족한 판매량은 끝없이 연 씨 부부를 좌절케 했다.

장명옥 씨가 만두피를 만들고 있다./신동빈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장사는 사람들의 입소문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않고 버텨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차츰 사람들의 발길이 늘기 시작했다. 시장 뿐만 아니라 인근지역에서도 국수를 주문하는 전화가 밀려왔다. 저렴한 임대료 때문에 시장 구석 골목에서 장사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주변에 주차장이 들어서면서 '우암국수'가 자리를 지키던 구석진 골목이 시장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됐다. 이제는 시장 거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골목이 된 셈이다.

'우암국수'는 음식점이 아닌 국수를 제조해 판매하는 가게다. 역사가 오래된 가게로 소문난 우암국수에 국수를 먹으러 온 손님들도 여러 있었다. 엉뚱하게 가게를 찾은 손님들이 몇 차례 국수를 사가면서 단골까지 된 경우도 있다.

한번 맛보면 다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우암국수의 국수 면과 만두피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신동빈

면과 만두피는 계절과 시기에 맞게 그 판매가 균형있게 잡혀있다. 겨울철에는 따끈한 국물을 찾는 이들이 많아 칼국수가, 여름에는 시원한 열무국수에 쓰일 잔치국수가 인기다. 만두피는 설 명절을 앞두고서는 국수를 제치고 불티나게 팔린다. 만두피는 20년 넘게 팔아 오다 최근 5년 전부터 주문이 점차 늘고 있다. 뒤늦게 빛을 보는 만두피를 통해 연 씨 부부는 손님들의 입소문과 평가가 장사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계기였다고 전했다.

시골 손맛을 자랑하는 우암국수의 국수는 1년 365일 중 명절인 설날과 추석을 제외한 363일 문을 열고 있다. 여기에는 일이 고된 것보다 가게를 찾은 손님이 빈 손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힘들다는 연 씨 가족의 착한 마음이 숨어있었다. 이들은 앞으로도 변함없는 국수의 맛을 지키기 위해 새벽의 문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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