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연의 차 이야기] 24. 봄은 녹차의 향기로 스민다

손바닥만 한 앞마당에 봄이 한웅 큼 쌓인다. 누렇게 엉켜 누워있던 잔디 속 사이로 초록이 가는 수놓듯 올라오고 화들짝 열려있는 앵두꽃이 수줍게 반짝인다. 햇빛 따라 길게 늘어난 매화의 위초리도 잉태의 슬로건을 높이 걸고 붉은 가지를 쨍쨍하게 태운다.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마당의 봄단장에 나섰다. 방안의 화초들을 마당의 볕이 잘든 곳에 가지런히 옮겨놓고 담벼락에 군락을 이룬 능선화의 말라비틀어진 가지도 잘라냈다. 멋없이 키 만 큰 주목나무의 머리도 동그랗게 다듬고 작년에 심어놓은 장미 줄기도 나무 대문을 타고 오르도록 방향을 잡아주었다. 장미 줄기가 대문을 타고 예쁘게 피어나는 상상을 하니 괜스레 설렌다. 테라스 밑의 잡초도 말끔히 제거하고 긴 호수로 물을 흠뻑 뿌렸다. 산뜻해진 마당에 비로소 봄이 온 것 같다.

주변엔 봄 놀이가 한창이다. 뽀얀 속살을 하염없이 열어놓은 듯 한 목련화, 갓 피어난 여인의 촉촉한 입술 같은 연보랏빛 진달래, 노란 개나리,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벚꽃들을 막연히 바라보고 있자면 가끔 사면초가의 지경에 빠질 때가 있다. 그래서 봄바람이란 말이 나왔을까.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단다. 꽃 하면 여성을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요즘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알록달록한 야생화들이 우후죽순으로 피어나 사부작거리면 목석같은 사내도 힐끔거리며 내심 좋아하는 눈치다. "올핸 앵두가 많이 열리겠네" 라며 앵두꽃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그도, 나이 먹을수록 평소에 관심 없던 꽃나무 이름을 물어보는 일도 그렇다. 꽃방이란 선비의 단톡방도 예외는 아니다. 계절에 따른 꽃을 매일 선보이며 구구절절한 꽃말과 사연을 넘치는 그의 감성을 덧대 올리면 감동 먹은 댓글이 벌떼 모이듯 한다. 그런데 남녀의 구분이 없다는 점이다.

눈으로 먹는 호사는 그렇다 치고, 봄비에 떨어져 나뒹구는 낙화의 모습은 어떤가. 팔락팔락한 꽃잎들이 바람을 못이긴 척 솨르르 쓰러지면 낙화암의 아리따운 삼천궁녀가 목숨 접고 투신하는 생사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 처연하다 못해 애간장을 녹인다. 잔잔한 가슴에 불 지르더니 밥알 대기 같은 싹 하나 붙여놓고 사라지는 봄은 예쁜 여우의 달이다.

봄은 사월의 신부같이 청초하기도 하다. 꽃 나간 자리의 싹들이 옴팡지게 영역을 지키며 부활하는 까닭이겠다. 이 가녀린 싹들이 일구어 낼 푸른 초원을 생각하면 벌써 마음이 시원해진다. 과도한 염색체의 세포분열을 통해 그늘을 만들어주고 가을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겨울을 지킨다. 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 마당에 핀 꽃들의 환락에 젖어 푸른 잎이 주는 원초적 행복을 잠시 잊었지 싶다. 등하불명 첩상불견(燈下不明 睫上不見)의 등잔 밑이 어둡고 눈썹에 가려 못 보는 꼴은 되지 말아야겠다. '화무십일홍'의 짧은 생도 꽃이 져야 잎이 피는 경이로운 자연의 진리라고 생각하니 봄은 삶의 새로운 도약이 맞겠다.

"차 한 잔 할까?" 그의 말이 봄만큼이나 향기롭다. 말끔하게 정리된 나무 테이블에 앉았다. 따사로운 봄볕이 풀잎 먹은 하얀 찻잔에 덩그러니 앉았다. 한 모금 마셨다. 농후한 녹차향기가 정원을 휘감는다. 나무도 꽃도 풀잎도 모두 차 향기에 취한 듯 유유자적하는 정원의 봄이 푸르게 익어간다. / 정지연 국제차예절교육원장·다담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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