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에 지천으로 돋아나는 잡초는 번식력이 매우 강하다. 아무리 뽑고 제초제를 뿌려도 이듬해가 되면 무성하게 돋아 오른다. 바람앞에도 쓸어지지 않고, 세찬 눈비를 맞으면서도 웃자라는 잡초의 생리는 그레샴의 법칙을 닮아서인지 약초보다 훨씬 강하다.
 김매기를 소홀히 하면 나락 반, 피 반이요 깜부기를 솎아내지 않으면 옥수수 농사를 망치고 만다. 농부는 알곡만을 원하나 그런 의사와는 관계없이 논밭에는 여전히 잡초가 피어오른다.
 자연이 그려놓은 벌판에는 약초, 독초, 잡초가 한데 섞여 있다. 진달래 꽃인줄 잘못 알고 철쭉 꽃잎을 먹었다가 사경을 헤멘 유년기의 추억이 생생하다.
 만물은 저마다 존재의 이유가 있다. 만약 들판이 약초로만 뒤덮혔다면 참으로 재미없는 세상이다. 약초를 캐는 재미는 잡초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영국 속담에 「잡초 없는 정원은 없다」고 했다. 잡초가 없다면 농부가 얼마나 게을러지겠는가.
 「그 다투어 자랑하는 꽃 그늘아래 뽑혀도 한결같이 돋아나고 엉켜붙어 스스로 비단결같은 초록을 이룬 잡초의 생리는 자칫하면 고독의 골짜기로 떨어지려는 오늘의 나의 의지를 지탱하여 주는 하나의 힘의 표현이다」 이영도는 「잡초처럼」이라는 작품에서 잡초를 애정어린 눈길로 보고 있다.
 씨뿌리지 않아도, 가꾸지 않아도 들판 곳곳에 피어있는 잡초는 가래, 강아지 풀, 개기장, 개쑥갓, 겨풀, 돼지풀,뚝새풀, 방동사니 등 2백여종에 이른다. 잡초중에는 토종도 있고 외래종도 있다.
 작물의 생육을 저해하는 성가신 풀들이지만 벌판을 파랗게 물들이며 봄이 왔음을 알리고 갈대 풀은 바람을 연주하며 가을 소리를 낸다.
 잡(雜)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가지가 뒤섞이여 있다」는 것과 「순수하지 못함」의 뜻을 동시에 갖고 있다. 서양에서는 주로 다양함(Variety)으로 해석한다. 매거진이라는 잡지(雜誌)는 여러가지 소재의 수용을 뜻하며 잡화(雜貨)는 갖가지 물건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잡것, 잡놈, 잡담, 잡학(雜學), 잡기(雜技), 잡기장, 잡가(雜歌), 잡탕 등 「잡」자가 접두어로 들어가는 표현은 다소간 속되게 들린다.
 노무현 대통령이 e-메일로 발송한 이른바 「잡초 정치인」제거론이 정치권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판이 약초 일색으로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되고 투명한 증류수처럼 청정하다면 오죽이나 좋을까만은 그런 바람은 이상향이나 기대치에 불과할 것이다.
 문제는 낡은 정치판을 그대로 두자는 것이 아니라 약초의 수를 늘리고 잡초의 수를 줄이는 체질개선이지, 잡초 자체를 근절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약초와 잡초의 분별을 임의로 재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척박한 정치밭의 김매기는 오로지 유권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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