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강전섭 수필가

지상에는 밤하늘 별만큼이나 무수한 꽃이 핀다. 사람마다 고유한 이름이 있듯 꽃도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다. 꽃의 빛깔과 모양을 보고 지어진 이름은 들을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 절묘한 작명에 무릎을 탁 치며 탄성을 자아낸다. 그중 하나가 진주 목걸이다.

긴 겨울을 벗어날 요량으로 화원을 찾아든다. 바깥은 여전히 겨울빛인데 온실 안은 봄색이 완연하다. 구석구석 야생화들의 봄 잔치가 한창이다. 온갖 아름다운 자태로 나를 유혹한다. 연한 청포도처럼 생긴 다육 식물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만지면 톡 터질 것만 같은 구슬이 똬리를 틀고 앉아있다. 주렁주렁 매단 송이는 속에 물을 품고 있단다. 이름도 재미있는 진주목걸이다.

진주목걸이는 잎이 진주알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알알이 박힌 구슬은 인고의 산물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물을 품을 수 있게 잎사귀가 물탱크처럼 둥글고 두터워진 듯하다. 탱글탱글한 잎을 하나 둘 늘리며 민감한 기후 변화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진주목걸이는 감온성(感溫性) 다육 식물이다. 낮에 꽃잎이 열리고, 저녁에 오므라드는 것은 그러한 연유이다.

다가서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연두색 진주 형상이다. 잎이 환경에 적응하고자 구슬로 변했으리라. 자줏빛 긴 대궁에 꽃망울이 매달려 있다. 영롱한 구슬 속에 피어난 노란 꽃이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며 웃는다. 노랑 꽃잎 속에 촘촘히 박힌 수술들이 작은 진주알을 닮았다. 손톱 반쯤 크기의 노랑꽃이 눈을 사로잡는다. 어찌나 앙증맞고 아름다운지 현기증이 난다.

세상은 볼수록 신비로움이 가득하다. 동물과 다르게 식물 세계는 다가갈수록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조물주가 천지를 창조할 때 동물은 이동 수단을, 식물은 본연의 색과 향으로 도움주거나 사로잡는 힘을 준 모양이다. 식물은 주변 환경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 빛을 낸다. 문득 지난날 목걸이에 얽힌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아내와 결혼 후 삼 년쯤 되었을 때였지 싶다. 결혼기념일에 어떤 선물을 할까 고민했다. 그러잖아도 결혼식 때 변변치 못한 예물이 늘 마음에 걸렸던 차다. 동료 여선생님들께 넌지시 물어봤더니 진주 목걸이가 좋다는 것이다. 큰맘 먹고 비상금을 털어 멋진 선물로 아내를 감동시킬 행동에 옮겼다. 그간 조금씩 모은 거금으로 우아한 진주 목걸이를 마련하였다.

결혼기념일 저녁에 진주 목걸이를 준비하고 식탁에 앉았다. 아내의 함박꽃 같은 환한 미소를 그리며 보석함을 내밀었다. 그간의 미안한 마음도 씻어낸다는 의미를 담은 선물이었다. 보석함을 받는 행복한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목걸이를 본 순간 얼굴은 기쁨에 찬 표정이 아니었다. 왜 이런 선물을 마련했느냐는 듯 책망의 모습이었다. 아내의 웅숭깊은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철없는 남편이 되고 말았다.

진주 목걸이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보석이다. 보석을 좋아하지 않는 여자가 어디 있으랴. 결혼 초를 떠올리면, 참 힘든 시기였지 싶다. 박봉에 연년생 어린 두 딸 키우랴, 시댁에 신경 쓰랴, 남편 대학원 학비 대랴, 살림의 여유가 없었으리라. 내심 고마우면서도 팍팍한 살림살이에 거액의 진주 목걸이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어쩜 아내는 여자의 본능을 억제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연두색 진주목걸이는 아내가 참 좋아하는 선물일 성싶다. 진주목걸이란 이름이 보석이라 좋고, 봄을 상징하는 노란 꽃이라 더욱 좋다. 춥고 어두운 계절을 떨쳐내는 꽃처럼 느껴져 듬뿍 친근감이 든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의 당당한 모습이 믿음직스럽듯 척박한 환경을 이겨낸 꽃이 아름다운 법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사랑을 받는가보다.

진주목걸이는 봄을 품은 꽃이다. 아내를 위해 꽃 화분을 품에 넣는다. 아내가 보석인 진주 목걸이는 달갑잖게 여겼지만,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다육 식물 진주목걸이 꽃은 반길 듯싶다. 아내는 사계 중 생명이 움트고 꽃들이 저마다 향기로 뽐내는 봄을 유독 좋아한다. 특히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타고 넘실대는 노랑 꽃무리를 무척 사랑한다.

봄을 상징하는 연두색과 벙근 몽우리가 눈을 사로잡는 진주목걸이. 보석함에 진주 목걸이를 담듯, 아담한 화분에 진주목걸이를 담는다. 전원에서 소박하고 낙락한 삶을 즐기는 아내에게 바치는 최고의 선물이리라.

습습한 바람결에 꽃향기가 풍겨온다. 들뜬 마음에 진주목걸이를 안고 조심스럽게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꽃 화분을 들고 미소 짓는 아내의 얼굴이 얼른 보고 싶다. 진주목걸이를 받아든 아내의 환한 얼굴이 그려진다.



약력

▶ 2015년 수필과 비평 신인상

▶ 사단법인 딩아돌하문예원 이사 겸 운영위원장

▶ 청주문화원 이사

▶ 충북국제협력단 친선위원회 위원장

▶ 우암수필문학회 회원

▶ 충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원

▶ 청주문인협회 회원

▶ 충북수필문학회 사무국장

▶ 청주대성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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