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지난 겨울은 유독히 추웠다. 그전 같으면 삼한사온이라서 조금 추웠다가 누그러지기도 한데 요즘은 지온난화 현상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입춘이 지나고 나서도 한겨울 못지않게 춥다. 그래서인지 아끼는 화분 두서너 개가 얼마의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생기가 없는 것 같아 내심 속이 상했다. 물론 화분관리에 전문지식이 없는 내 탓이라 누구를 원망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작은 미련으로 정성껏 물을 주며 혼자서 "사랑해요"하며 축복해 주었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도 별 소용이 없는 것 같아 화분 분갈이할 때 아예 다른 품종으로 바꿀까하고 생각도 해 봤지만 아까운 마음에 말없는 화분과 또 사랑의 밀담을 나누어본다. 그런데 며칠전 그 화분에서 파아란 엷은 싹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정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래, 이거야, 바로 사랑으로 기다려주니까, 네가 나를 잊지 않고 보답해 주었구나, 그러면 그렇지, 내가 너의 겉모습만 보고 분갈이한다고 버렸으면 어떻게 했겠니 속에서는 봄을 태동하고 있었는데 말이다"하며 화분을 만지며 예쁘게 닦아주었다. 이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쑤욱 쑤욱 자라 제법 화분을 가득히 채우려고 한다.

지금도 어느 분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뇌리를 스치곤 한다. 어느날 빛바랜 줄무늬 드레스를 입은 부인과 허름한 홈스펀 양복을 입은 남편이 약속도 없이 하버드 대학교 총장 사무실로 들어 갔다. 남자가 "총장님을 뵙고 싶습니다"라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꺼내자 총장 비서는 이들의 남루한 행색만 보고 "총장님은 오늘 하루 종일 바쁘실 것입니다"라고 딱 잘라 거절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몇 시간동안 기다리자 비서가 당황하여 결국 총장에게 알렸다. 총장은 곧은 표정으로 위엄을 부리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부인이 그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에겐 하버드대에 다녔던 아들이 있는데 그 애는 하버드를 대단히 사랑하였고 여기에서 무척 행복해 했습니다. 그런데 약 일년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캠퍼스에 그 애를 기념물 하나를 세웠으면 합니다"라고 전했다. 그러자 총장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부인, 우리는 하버드에 다니다 죽은 사람 모두를 위해 동상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다면 이곳은 아마 공동묘지같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이 말에 부인은 "동상을 세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학에 건물을 하나 기증하려 합니다". 총장은 낡은 줄무늬 옷과 홈스펀 양복을 번갈아 보고나서 소리를 높여 말을 하였다. "건물이라고요! 건물하나가 비용이 얼마나 드는 지 아시고 하시는 말입니까. 현재 하버드에는 750만 달러가 넘는 수의 건물들이 들어차 있습니다" 잠깐 침묵하던 부인은 남편에게 조용히 말했다. "대학교를 하나 설립하는 데 비용이 그것밖에 안드는가 보죠. 그러지 말고 우리가 대학교를 새로 하나 세우지 그래요"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총장의 얼굴은 혼돈과 당혹감으로 일그러 졌고 이들 내외는 바로 일어나 곧장 캘리포니아의 팔로알토(Palo Alto)로 여행을 떠났고 거기에 자기들의 이름을 딴 스탠포드 대학교(Stanford Univ.)를 설립하였다고 한다.

이성범 수필가

우리는 삶의 여정속에서 자칫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쉽게 선택하고 판단 할 때가 종종 있다. 늘 직관적인 판단은 쉽게 아쉬움을 남기곤 한다. 우리 모두 자신도 모르게 자리 잡고 있는 잘못된 선입견을 과감하게 버리고 보다 객관적으로 더 깊게 그리고 넓게 사고할 때 우리의 삶의 오류는 조금씩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