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컬쳐디자이너·에세이스트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약식동원(藥食同源). 약과 음식은 그 근원이 같다는 뜻이다. 향토색 짙은 음식이나 토종의 동식물이 사람의 건강에 도움을 준다. 해외 여행길에서 맛보는 이색음식은 색다른 맛을 주지만 오랫동안 먹을 수는 없다. 내 몸과 내가 자라온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신토불이(身土不二)라고 하지 않았던가. 세종대왕은 '구선왕도고'라는 음식을 즐겨 먹었다. 구선왕도고는 아홉 가지 재료를 섞어서 만든 떡의 한 종류다. 연육, 산약, 백복령, 율무, 맥아, 백변두, 능인, 시상, 사당 등을 멥쌀가루에 한데 섞어서 시루에 찌는데 대단한 정성이 필요하다. 조선왕실의 건강을 위해 내려오던 궁중의 한방 보양식이었다. 비장과 위장을 도와 소화를 잘 되게 하고 입맛을 나게 하며 신장의 기운을 도와 원기를 돕고 면역기능을 길러준다.

아홉가지의 한방약재를 하나씩 살펴보면 건강보감 따로 없다. 연꽃의 열매인 연육, 산마를 말린 산약, 소나무 뿌리에서 자라는 약재인 백복령, 동맥경화 등 성인병 예방효과가 큰 율무, 소화를 돕고 입맛을 돋우는 엿기름인 맥아, 콩과에 속한 넝쿨풀 백변두, 마름의 익은 열매를 말린 능인, 곶감의 표면에 묻어 있는 하얀가루인 시상과 단맛을 내는 사당 등이 있다.

구선왕도고는 한방약재로 만들었지만 쓴맛이 없고 향기로운 떡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안질과 당뇨와 욕창 등으로 고생했던 세종대왕이 즐겨 먹은 이유가 아닐까. 유아에서 성장기 어린이, 청소년과 노인 등 모두에게 유익한 보양식이다. 구선왕도고와 비슷한 약떡으로 복령조화고(茯笭造花?)가 있는데 백복령, 연육, 산약과 가시연밥인 검인 등의 한방약재가 가미된다. 귀와 눈을 밝게 하며 허리나 무릎 아픈 데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종대왕은 초정행궁에서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몸과 마음 모두 지쳐 있었다. 기력을 되찾아야만 조선의 르네상스를 일굴 수 있었기에 부랴부랴 초정으로 내려온 것이다. 당신께서는 초정 일원에서 자라고 키운 한약재와 채소류, 그리고 고기를 즐겨 먹었을 것이다. 떡과 고기를 좋아했다는 것은 여러 문헌에도 나오는 대목이다.

그리고 모든 음식에는 시원하고 톡 쏘는 초정약수를 활용했다. 약수 때문에 이곳으로 달려왔으니 하루에도 몇 번씩 초정수를 마시며 목욕을 했으며 음식을 조리할 때는 우물에서 샘솟는 약수를 사용했다. 국이나 찌개를 만들 때에도, 김치나 술을 담글 때에도, 화채에도 초정약수를 이용했다. "시원하고 톡 쏘는 맛이 산초와 같다"며 좋아하지 않았던가. 초정약수는 탄산성분과 철분이 많아 위를 보호하고 땀띠기나 건선 등 피부의 잡티를 없애주는 효력이 있다. 음식을 감칠맛 나게 하고 시원한 맛이 배가되는 마력도 있다. 물김치를 담으면 하얗게 뜨는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다. 술을 빚으면 그 맛이 깊고 진하다.

세종실록에는 초정약수 주변에 복숭아꽃과 오얏꽃, 그리고 뽕나무, 소나무, 참나무가 많았다고 기록돼 있다. 소와 돼지 등의 가축도 그 맛이 일품이어서 진상까지 했다. 바로 이것들이 초정약수와 함께 세종대왕의 음식이었을 것이다. 돼지고기를 양념하여 구운 맥적, 소고기 등심을 손바닥 크기로 썰어 두드린 뒤 양념 후 구워 먹는 너비아니, 도토리묵과 된장국 등을 즐겨 먹었을 것이며 시원한 물김치로 입가심을 했을 것이다.

변광섭 컬쳐디자이너·에세이스트

조선 왕실에서는 물을 보약처럼 귀하게 여겼다. 선조는 물을 끓였다가 식히기를 100번이나 반복하는 백비탕(白沸湯)을 즐겨 마셨으며 태조·정종·태종·세종은 온천욕을 즐겼다. 퇴계 이황은 '활인심방'이라는 의학서적에서 "좋은 마음과 좋은 음식, 그리고 반듯한 생활습관이 최고의 건강법"이라고 소개했다.초정에 세종대왕 행궁을 조성하고 있다. 행궁조성이 완성되면 세종의 건강한 밥상,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이 있으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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