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er Evans-Tenant Farmer's Wife. 1936(좌) Sherrie Levine-Untitled(After Walker Evans), 1981(우)

필자는 지난 연재에서 미술을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한다고 중얼거렸다. 아날로그 아트와 디지털 아트가 그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사진도 아날로그 사진과 디지털 사진으로 구분한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필자는 아날로그 사진에서 디지털 사진으로 넘어가기 전에 아날로그 사진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할 '연출사진'으로 신디 셔먼의 사진을 들어보았다.

자, 이제 디지털 사진을 보도록 하자. 필자는 디지털 사진의 첫 사례로 어느 여인의 초상사진을 들어보겠다. 그것은 목조로 지어진 창고 같은 건물에 기대어 있는 여인을 찍은 사진이다. 마른 몸의 여인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사진가(카메라)를 주시하고 있다. 그것은 여인의 '분위기(aura)'를 절묘하게 포착한 사진이다.

머시라? 그것은 워커 에반스(Walker Evans)의 <소작농의 아내(Tenant Farmer's Wife)>가 아니냐고요? 맞다! 그렇다면 1936년 워커 에반스(1903~1975)가 찍은 사진은 아날로그 사진인데, 어떻게 필자가 그것을 디지털사진의 첫 사례로 들 수 있느냐고요? 필자가 디지털 사진으로 사례를 든 것은 워커 에반스의 <소작농의 아내> 옆에 있는 사진이다.

뭬야? 그 두 사진은 같은 사진 아니냐고요? 그들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요? 그 두 사진이 다른 사진작가가 찍은 것이란 말인가요? 그렇다! 왼쪽의 사진은 워커 에반스의 <소작농의 아내>(1936)이고, 오른쪽의 사진은 세리 레빈(Sherrie Levine)의 <무제(워커 에반스 이후) Untitled(After Walker Evans)>이다. 어떻게 똑같은 사진들이 다른 사진작가의 작품이냐고요?

워커 에반스는 흔히 '서정적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사진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1935년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농업안정국(Farm Security Administration)이 입안한 자료 수집사업에 참여하여 농촌 및 농민의 실태, 황폐한 가두풍경 등 미국 동남부의 경제 불황 실태를 기록했다. 그의 <소작농의 아내> 역시 당시 촬영한 사진이다. 그 사진은 그의 작품집 '워커 에반스의 처음과 마지막(Walker Evans First and Last)'(1978)에 실려 있다.

1981년 뉴욕의 메트로 픽쳐스 갤러리에서 워커 에반스의 <소작농의 아내>와 똑같은 사진이 전시되었다. 그런데 그 사진의 제목이 <Untitled(After Walker Evans)>였다. 워커 에반스 이후? 그렇다! 그 사진은 워커 에반스가 아닌 세리 레빈의 <무제(워커 에반스 이후)>이다. 이를테면 그 사진은 미국 다큐멘타리 사진의 새로운 미학을 창조했다고 평가받는 워커 에반스의 <소작농의 아내>를 세리 레빈이 다시 찍은 작품이라고 말이다.

1981년 세리 레빈은 1978년에 출간된 워커 에반스 사진집 '워커 에반스의 처음과 마지막'에 인쇄된 워커 에반스의 <소작농의 아내> 도판을 접사대에 놓고 재촬영한 뒤 그 어떤 조작 없이 인화하여 자신의 작품(<무제(워커 에반스 이후)>)으로 전시했다. 당시 세리 레빈의 '워커 에반스 이후' 시리즈는 표절논란에 휩싸였다. 왜냐하면 세리 레빈의 '워커 에반스 이후' 시리즈는 워커 에반스의 작품을 '표절'을 넘어 '도용'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리 레빈은 배짱 있게 원본과 사본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이를테면 워커 에반스의 <소작농의 아내>와 세리 레빈의 <무제(워커 에반스 이후)> 사이에 원본/복제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포착불가능하다고 말이다. 그렇다! 세리 레빈의 '워커 에반스 이후' 시리즈는 원본/복제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해체시킨다.

미술에서 원본은 흔히 '독창성'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미술은 정말로 독창적인 것일까? 세리 레빈의 답변이다. "미술이란 자연이라는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은 정말로 독창적인 것일까? 당 필자, 세리 레빈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자면 '사진이란 자연이라는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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