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함이며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클립아트코리아

청주 우암동 흥덕 대교를 넘어서면 주택가에 조용하고 아늑한 교회가 있다. 그 교회를 다닌 지가 어느 덧 30여 년을 넘어섰다. 그동안 이 교회에서 목회를 하신 목사님은 다섯 분으로 제5대 목사님은 28년이라는 세월을 헌신하셨다. 한 주 한 주 목사님의 은퇴시간이 다가오면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아쉬움과 섭섭함으로 교회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목사님을 처음 만난 건 신혼 무렵이었다. 강원도에서 이곳으로 부임하면서 집으로 심방을 오셨다. 40대의 수려한 용모에 어깨가 딱 벌어진 목사님과 세련된 투피스 느낌을 주는 사모님은 외모와는 달리 소박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앞에 목사님 사택이 들어서면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자주 병원신세를 져야 했던 나는 아이가 아파 앞이 캄캄해 질 때 마다 사택으로 달려가 목사님의 기도를 받으며 많은 위로와 걱정을 덜었다. 간절한 순간에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다. 교회는 목사님 내외의 열정과 사랑으로 활력과 생기를 되찾아갔다. 교인은 점점 늘어나 3부로 나눠 예배를 올렸다. 미약했던 내 믿음은 세월이 점점 지남에 따라 집사, 권사 직분도 받았다. 그런데 나의 간절했던 믿음은 성숙하지 못한 신앙생활로 추락했다. 나는 늘 나의 삶이 타인에 의해 돌려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혼자 멋대로 굴러가는 나를 보며 목사님 내외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기도했다. 나의 자만은 드디어 꼭지마리가 부러진 물레처럼 멈출 줄 몰랐다. 그 후 내게 상상하지 못 할 불행이 찾아왔다. 그 불행은 평생 나에게 외줄을 타게 했다. 외줄이 몹시 흔들거릴 때마다 목사님 내외는 불쌍한 나를 위해 기도했다. 그 기도가 어언 20년을 이어왔다.

그런 목사님 내외분이 이제 이 교회를 떠난다. 나약하고 고단할 때마다 유일한 안식처를 제공하며 마음을 치유하게 하고, 새로운 힘을 실어준 28년이다. 어미가 떠난 이 교회에서 은혜로운 찬양을 할 수 있을까, 힘들 때마다 손 내밀어 주고 등 뒤에서 '일어나 걸어라' 하며 일으켜 줄 사람 없는 곳에서 간절한 기도를 할 수 있을까.

오늘, 마지막 고별 예배를 올린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성숙하지 못 한 양떼를 놓아두고 떠나는 목자의 염려이자 염원이었다. 교인 한 명 한 명에게 믿음의 방파제를 튼튼하게 쌓고도 돌아서는 길이 편치 않으신 양 마지막 설교도 여전히 '염려하지 말라' 였다.

어떤 교우가 '목사님, 은퇴하시면 어떻게 지내실건가요?"물었다. 목사님은 평온한 모습으로 "지금까지 48년 목회를 하면서부터 새벽 2시에 기상하여 새벽 재단을 쌓는 것을 시작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제가 재단에 서지 않는다 해서 신앙생활이 달라질게 없습니다. 여전히 믿음으로 봉사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김민정 수필가

마지막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목사님의 마지막 축도가 이어졌다. "주님, 비록 이 몸은 떠났어도 남아있는 형제들에게 고난에서 자유 함을 얻게 하시며 저들에게 천국의 빛을 허락 하소서, 지금으로부터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함께하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하심과 교통하심이 이제로부터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 하옵나이다".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 똑같은 감정, 똑같은 눈빛은 영원한 성자 모습이셨다. 70성상을 뜨겁게 목회를 이끌어 오신 내외분의 모습이 내 시간 속에서 영원히 아름답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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