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리’의 조감독 출신이었던 백운학감독의 데뷔작 ‘튜브’는 이 작품이 “‘스피드’처럼 재미있는 오락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의도에서 시작됐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이에 따른 벤치마킹 차원에서 적잖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연구하고 또 부분적으로 차용했음도 솔직히 드러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국형 블록버스터’로서의 좌표 또한 잊지 않는다. ‘쉬리’에서 비롯된 ‘액션+멜로’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 눈에 친숙한 김포공항 건물이 풍비박산나는 놀라운 총격전 장면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재미있는 오락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여준다. 상투적이기는 하나 여전히 효과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사운드 효과와 함께 진행되는 총격전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 LA 시가지에서 펼쳐지던 ‘히트’의 총격전 시퀀스를 연상시킬 만큼 볼거리로서의 위력을 갖추고 있다.
 이 장면이 할리우드 영화 학습의 효과를 유감없이 발휘한다면, 이어지는 오프닝 타이틀의 분위기 반전은 ‘한국형’에 찍힌 방점을 새삼 환기시킨다. 마치 홍콩영화처럼 묘한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배두나의 내레이션이 깔리면서 떠돌이 캐릭터인 소매치기 인경의 사랑이야기가 소개된다. 공항 총격전에서 짧게 제시된 영웅(장도준 형사)-악당(테러범 강기택) 캐릭터의 대결구도에, 인경의 짝사랑이 끼여들면서 일종의 2인 3각 경기와 같은 구도를 취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
 한국영화에서 일종의 틈새공간이었던 지하를 공략한 ‘튜브’는 블록버스터라는 규모의 경제학을 실천하는 한국의 영화만들기가 부단히 진보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공항 총격전도 그렇지만, 지하철 역사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나 제어할 수 없는 속도감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액션신들은 한국영화의 시청각적 쾌감에 대한 기여도를 부인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처럼 ‘튜브’의 기술적 성취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는 만큼 비례하는 것은 역시나 드라마에 대한 아쉬움이다. 점점 파국을 향해 내달리는 극의 속도감과 상반되는 정태적 캐릭터들은 분노하거나 복수하는 남자, 혹은 사랑에 빠진 여자의 단선적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 주변에 다양한 조연들이 배치되지만 이들 또한 많은 영화들에서 보아왔던 캐릭터들의 전형성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라마의 완성도에는 그다지 기여하지 못한다.
 보여줄 것만 확실히 보여주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생략하는 태도 또한 적잖은 불편을 초래한다. 아무리 속도감에 압도되는 액션영화라지만 인물들의 행동과 정서 이해에 필수적인 정보마저 생략하거나, 하나의 상황이 종료되고 새로운 상황을 맞게되는 국면의 전환마다 개연성 부족이 역력하게 드러나면서 관객의 몰입은 번번이 방해받는다. 특히 궁극적으로 멜로 정서가 강조되는 영화에서 이러한 이야기 방식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신 ‘튜브’를 특징짓는 선택은 숱한 이미지컷의 사용이다. 장도준, 강기택의 과거를 설명해주는 회상신이나 송인경 등 인물들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슬로모션은 뮤직 비디오가 그렇듯 사건과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과 함께 과잉에 가까운 감정분출을 유도한다. 후반부 장도준과 송인경의 관계가 정보 부족과 감정의 느닷없는 진전에도 불구하고 일정 부분 관객의 공감을 끌어낸 것도 이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스피드’ 같은 속도감과 ‘쉬리’같은 감정 모두를 겨냥한 ‘튜브’의 실험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세상에는 ‘잘 만든 블록버스터’와 ‘못 만든 블록버스터’만이 존재하며 ‘잘 만든 블록버스터’는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서 나온다는 것을. 안타까운 것은, ‘튜브’ 또한 이 교훈을 절반의 실패와 함께 환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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